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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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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평김씨(咸平金氏)의 시조 김구정(金九鼎)은 상산김씨 시조 김수(金需)의 22세손으로 알려졌으며 김구정은 함평군(咸平君)에 봉해졌다고 한다.그 뒤 후손들이 상산김씨에서 분관하여 김구정을 시조로 받들며 세계(世系)를 이어왔다.한편 경순왕의 넷째 아들 대안군(大安君) 김은열의 12세손인 동정공 김철명(金哲明),신라 45대 신무왕의 후손으로 전해오는 김취실(金就實),마의태자(麻衣太子) 후손을 시조로 전하는 문헌도 있다.함평김씨는 조선시대에 무과(武科:무관을 뽑던 과거로 시험은 무예와 병서)에 10명 사마시(司馬試:생원.진사를 뽑던 과거)에 3명 등 13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함평(咸平)은 전남 함평으로 1895년(고종32)지방제도 개정으로 나주부 함평군이 되었다가 1896년 전라남도 함평군이 되었다.1932년 식지면과 평릉면이 합병하여 나산면으로 신설,1963년 함평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함평김씨(咸平金氏)는 2000년에는 총 502가구에 1,612명이었다.해남김씨(海南金氏:당악김씨 棠岳金氏)문헌에 의하면 해남김씨(海南金氏)의 시조 김인(金忍)은 조선 태종때의 원종공신(原從功臣)으로 남병(南兵)의 좌막(佐幕)으로 있으면서,나주 마산 구업리에 살았다고 한다.본관의 유래에 대해서는 고증이 필요하나 해남에 구전되는 말에 의하면,고려말에 병부상서(兵部尙書:정3품 국방장관)를 지낸 김씨(金氏)가 난을 피하여 해남으로 내려와 살았으므로 후손들이 본관을 당악(棠岳:해남,지금은 남해)으로 삼았다고 한다.시조 김인(金忍)은 경순왕의 후손으로 조선조에 가선대부(嘉善大夫:종2품 품계)에 올라 행오위도총부부총관(行五衛都摠府副摠管:종2품)을 지냈다.해남김씨족보(海南金氏族譜’:고한주 高漢柱 서문)에 보면 해남김씨는 옛 당악김씨인데, 조선 태종때 총관(摠管:정4품차관) 벼슬을 지낸 김인(金忍)을 시조로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계해보(癸亥譜)’ 서문에는 대보공(大輔公) 김알지(金閼智)의 후손 경순왕을 거쳐 김인으로 대를 이어왔다고 한다. 또 신라김씨2천년사(新羅金氏二千年史)에는 김인은 경순왕의 셋째아들 김명종(金鳴鍾)의 19세손이라 하고, 3세손 김남보(金南寶:병조판서)가 난을 피해 해남으로 내려가 살았으므로 후손들이 본관을 당악(棠岳,해남의 옛 이름)으로 하였다고 씌어 있다. 그러나 계해보(癸亥譜)의 손록(孫錄)에는 김남보란 인물은 없다. 계해보 서문대로 김인이 당악현(棠岳縣)에 웅거하게 되었기에 후손들이 해남을 본관으로 정했다.해남김씨(海南金氏)의 낙남시조(落南始祖) 김인(金忍)이 지금의 전남 해남군을 거쳐 나주(羅州) 마산(馬山)의 구업(龜業)에 정착하였다는 사실이 계해보(癸亥譜)에 있는 것으로 보아 선계(先系)는 아주(羅州)일원에 세거했다.해남김씨(海南金氏)는 인구조사에서 2000년에는 총765 가구에 2,455명이었다.해남(海南)은 1448년(세종 30) 황원현(黃原縣).옥산현(玉山縣).죽산현(竹山縣)과 병합하여 당악(棠岳)으로 개편하였다가, 다시 해남현(海南縣)으로 개칭하였다.그래서 해남김씨를 옛지명인 "당악김씨"라고도 한다.1896년 전라남도 해남군으로 개편하면서 부근의 도서를 완도군으로 이속시켰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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