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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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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개김씨는 문헌과 족보인 '갑자보(甲子譜)' 서문(序文)에 의하면, "공민왕때 태자첨사(太子詹事동궁에 속한 정3품)였던 김훈(金勳)이 망국(亡國)과 더불어 만수산(萬壽山)에 은거하여 대대로 개성(開城)에서 포의(布衣베옷.벼슬하지 않은 사람이 입는 옷)로 견디었다"고 기록되어,대대로 개성(開城)에 세거지(世居地)를 형성하여 왔다.개성파(開城派)는 개성군 청교면(靑郊面)을 비롯하여 개성군 일원에 세거하였으며,17세 김상곤(金象坤)의 대를 전후하여 일부가 장단군 일원에 정착했고, 일부는 20세 김안영(金安榮)의 대를 전후하여 연천군(漣川郡) 일대로 세거지를 확대시켰다. 15세 김대륜(金大輪) 대를 전후하여 일부는 금천(金川)으로 세거지를 옮겼다고 한다.하동파(河東派)는 10세 김영혁(金英爀)의 대(代) 이후로 하동으로 세거지를 옮겼으나, 개성파와의 이산(離散)으로 그 기록이 미흡하다. 고성파(固城派)는 9세 김도정(金道正)을 전후하여 고성(固城),진양(晋陽) 등지에 세거지를 형성했다고 한다.1930년대 화개김씨의 분포상황은 경기도 개성시,경북 상주군,경남 진양군.하동군.고성군(固城郡)일원에 정착하고 있다. '화개김씨보(花開金氏譜)' 중간(重刊) 서문 말미에는 고한융희기원9년을묘(故韓隆熙紀元9年乙卯)라 하였고,중국 강소성(江蘇省) 남통현(南通縣) 신민(新民)에서 내각사적과장 택영 근서(內閣史籍課長 澤榮 謹序)라 하였다.화개(花開)는 경상남도 하동군(河東郡)에 속해있는 지명으로,신라 경덕왕이 화개현(花開縣)으로 고쳐 하동군(河東郡)에 속하게 하였다. 고려때는 현종(顯宗)이 진주(晋州)에 속하게 하였고,조선 숙종때 하동군(河東郡)에 합쳐져서 화개면(花開面)이 되었다. 화개김씨(花開金氏)는 고려 원종때 나라에 공을 세워 병부상서(兵部尙書:정3품국방장관)를 지내고 화개위(花開尉)에 봉해진 김인황(金仁璜.시호 문희 文僖)을 시조(始祖)로 받든다.그런데 화개김씨(花開金氏)의 상계(上系)에 대해서 여러 설(說)이 있어 왔다. 본래 화개김씨 상계의 소목(昭穆:사당등에 신주놓는 차례)이 실전(失傳:대대로 이어온 사적이나 묘지를 알 수 없게됨)되어,족보 병자보(丙子譜)를 간행할때 하동계(河東系)의 가승(家乘)과 진양계(晋陽系)의 가승(家乘)을 참작,종파(宗派)인 고성파(固城派)의 구관(舊貫)을 따라 진양김씨(晋陽金氏)라 하였다고 한다.그러나 그 뒤 창강 김택영(滄江 金澤榮)의 발의로 득관시조(得貫始祖) 문희공(文僖公) 김인황(金仁璜)이 진양후(晋陽侯)에 봉작되었다는 사실은 잘못임이 밝혀져 '을묘보(乙卯譜)' 이후에는 화개(花開)를 관향(貫鄕)으로 하고 있다.경남 고성지방에 세거(世居)하던 후손들이 처음에 관향(貫鄕)을 진양(晋陽,진주)으로 사용해 왔고, 하동(河東)과 개성(開城) 지방에 살던 후손들은 화개김씨(花開金氏)로 했으나, 1876년(고종13) 보첩(譜牒)을 처음 만들면서 본관(本貫)을 화개(花開)로 통일하였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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