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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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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헌에 의하면 화순김씨(和順金氏) 시조 김익구(金益九:1645년생,자는 사겸)는 김두문의 아들로 1645년(인조 23)생이며, 서기1675년(숙종1) 식년문과(式年文科:3년마다 보던 정기과거시험)에 병과로 급제하고 벼슬이 현감(縣監:종6품수령)에 이르렀다.그러나 선조와 후손에 대해서는 문헌의 실전(失傳:대대로 이어온 고적이나 묘지를 알 수 없게 됨)으로 알 수가 없다. 한편 <화순김씨세보>에는 시조 김익구는 문양공파 김창일의 39세손으로 기록되어 있다. 기록에 의하면, 신라 경애왕(신라 55대왕:재위 924~927)이 포석정 연회 도중 견훤이 습격하자, 김창일이 기병과 함께 싸우다 순절(殉節:나라를 위해 또는 왕을 따라 목숨을 스스로 버림)하여 그 공으로 화순군(和順君)에 봉해졌으며,후손들이 화순김씨로 관향을 삼았다고 한다. 화순김씨(和順金氏)는 조선시대에 문과(文科:대과)에 2명,무과(武科:무관을 뽑던 과거로 시험은 무예와 병서)2명,사마시(司馬試:생원.진사를 뽑던 과거)에 6명 등 10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화순(和順)은 전라남도 화순으로 1895년(고종32)에 지방제도 개정으로 나주부 화순군이 되었다가,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읍내면이 화순면으로 개칭되고, 능주군을 화순군으로 개편하면서 동복군을 흡수하였다.1963년 화순면이 화순읍(邑)으로 승격되었다.인구조사에서 화순김씨(和順金氏)는 1985년에는 총 388가구 1,723명이었으며, 2000년에는 총 504가구 1,570명이었다.황간김씨(黃澗金氏,고산김씨)황간김씨는 고산김씨와 같은 뿌리이다.시조 김환(金紈)은 고산김씨와 동원으로 신라의 종성(宗姓)인 신라김씨로 전하고 있으나, 그 세계(世系)를 실전(失傳:대대로 이어온 묘지나 고적을 알수없게 됨)으로 인해 명확히 밝힐 수 없다.실전되기 전의 계보에 의하면, 시조 김환은 김연옥(金淵屋)의 아들로 서기 1510년(중종 5)식년문과(式年文科:3년마다 보던 정기과거시험)에 병과로 급제하고, 전적(典籍:성균관의 정6품)을 지냈으며 후손이 본관을 황간으로 하였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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