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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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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천김씨(熙川金氏)는 신라 경순왕의 여덟째 아들인 김추(金錘)의 셋째 아들 김우(金佑)를 시조로 받든다.신라종성(新羅宗姓)인 선산김씨(善山金氏)에서 분적된 희천김씨(熙川金氏)는 경순왕의 여덟째 아들로 일선군(一善君)에 봉해진 김추(金錘)의 셋째아들 김우(金佑)가 고려 강종(康宗:제22대왕,재위:1211∼1213)때 신호위대장군(神虎衛大將軍:종3품)으로 나라에 공을 세우고 문하시중(門下侍中:백관을 통솔하고 서정을 총리한 종1품 정승)에 올라 온양군(溫陽君)에 봉해졌으므로 관향을 온양(溫陽)으로 하였다.그러나 13세손 김우(金宇)가 조선조에서 왕자(王子)의 난(亂)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희천군(熙川君)에 봉군되었으므로, 그를 중시조로 받들고 본관을 희천(熙川)으로 개관(改貫)하게 되었다희천은 평안북도의 지명으로,1396년(태조5)희주군 으로 독립하였고, 1413년(태종13)희천군으로 개칭하였다 1949년 자강도가 신설되어 희천군이 편입되었고, 1967년에는 희천읍을 비롯한 희천군일원을 희천시로 승격하였다.1981년에는 명문리 양지리를 송원군에 편입시켰다.희천김씨는 조선시대에 문과(文科:대과)에 2명,사마시(私馬試:생원.진사를 뽑던 과거)에 5명 등 7명의 과거급제자를 배출하였다. 희천김씨는 2000년 조사에서는 총 772가구에 2,512명이었다.한편 신라 경순왕 아들인 김추(金錘)는 문헌에는 946년생인데, 아들인 김우(金佑)가 서기 1212년에 대장군(大將軍:종3품)에 올랐으므로, 200여년을 생존한 것으로 되기에 문헌의 세밀한 고증이 필요하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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