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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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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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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당에 들어 사가독서 한 라세찬,발영시에 장원급제금성(錦城)은 전라남도 중서부에 위치한 지역으로 나주 옛지명이다.통일신라 때 경덕왕이 금성으로 고쳤고 고려 태조가 후백제를 멸망시키고 지금의 나주(羅州)로 개칭하였다.금성라씨(錦城羅氏) 시조는 라총례(羅聰禮)이다. 시조 라총례는 고려초에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서기 940년 신흥사를 중수할 때 공신당의 동서벽에 초상을 그려넣은 나라에 공이 많은 공신)에 책록되었으며 후에 금성부원군(錦城府院君)에 봉해졌다.삼한벽상공신은 서기 936년(고려 태조 19)에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한 뒤,서기 940년 통일에 공이 큰 사람들에게 상을 내리면서 제정되었다.서기 940년 신흥사를 중수할 때, 그곳에 공신당을 세우고 동서의 벽에 삼한공신의 모습을 그렸는데, 이 벽에 그려진 공신을 "삼한벽상공신"이라고 한다.(편집자 주)시조 라총례의 선계(先系)는 당나라 태종 때,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고려때는 상서도성의 정2품부총리)였던 라지강(羅至强)으로,그는 고구려를 정복하자는 조정의 의견에 반대하고 우리나라에 망명하여 발라현(發羅縣:나주의 옛이름)에 정착, 신라조에 벼슬하여 좌승상(左丞相:종1품 정승)에 이르렀다.이때부터 라씨(羅氏)가 나주에 살게 되었으며, 신라 효공왕때 그의 원손 라경(羅璥)이 나주사찬(羅州沙飡:사찬은 신라시대 17관등중 8등 벼슬)에 봉해져서 본관을 나주(羅州)로 했다고 한다.그러나 연대와 세계(世系)가 확실치 않고, 또 나주는 당나라 태종 때는 발라로 백제 땅이었고, 신라 효공왕 때는 금산(錦山) 혹은 금성(錦城)이라 하여, 후백제 견훤(甄萱)의 치하에 있다가, 서기 903년 고려의 지배하에 들어가 후에 나주로 개칭하게 된 점으로 보아 라지강이 신라에서 벼슬하였다는 사실과 라경이 나주사찬에 봉해졌다 함은 객관성이 부족하므로, 연대와 세계가 확실한 나총례를 시조로 하고 본관을 나주로 하였다고 한다.(문헌 및 역사기록 참고)시조 라총례의 아들 라은고(羅恩誥)가 자의대부(資義大夫:고려 때 종2품 의빈품계)로 공빈승을 지내고 금산군에 봉해진것을 시작으로 11세손에 이르기까지 3명의 후손이 대광(大匡:정1품 품계)의 벼슬에 오르고 4명의 부원군(府院君)과 5명이 봉군되어 금성라씨는 성족의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그러나 나주에는 이 계통 외에 라 부(羅富)를 시조로 받드는 나주라씨가 있어 동본이족(同本異族)이 같은 나주(羅州)를 발원지로 삼게 되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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