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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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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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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주난씨의 본관유래와 시조에 대한 고증할 문헌이 아직 없으나,1985년 인구조사에서 1가구 5명이었으며,2000년에는 22가구에 서울 29명,부산 7명,대구 2명,인천7명,대전 2명,광주 1명,울산 1명,경기도 18명,강원도 1명,충남 1명,전북 3명,경북 3명,제주 1명 등 80명이었다.남 씨(南氏)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치는 아이는 상기 아니 일었느냐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느뇨. <남구만 지음>우리나라 남씨(南氏)는고령남씨.경주남씨.고성남씨.남양남씨.남원남씨.남평남씨.대전.밀양.보성.선령.안동.영양남씨.율영.은진.의령남씨.일흥.진주.창녕.함안.함열.해밀.흥양남시 등 총 22 본관이 있으나 영양.의령.고성남씨 이외는 세거하는 지명이며, 2000년 인구조사때 남씨(南氏)는 257.178명이었다.중국 봉양부 여남(汝南) 사람인 김충(金忠)은 당나라 현종 천보(天寶) 14년(신라 경덕왕 14)에 안렴사(按廉使)로 일본에 갔다가 돌아오다가 태풍을 만나 신라의 인근 지역인 경북 영덕군 축산면 축산동 죽도(丑山洞 竹島)에 표착(漂着:물에떠서 흘러다니다가 어떤곳에 닿음)하였다.그는 신라에서 살기를 원하여 경덕왕이 이러한 사실을 당천자(唐天子)에게 알리자 이 소식을 전해들은 당천자는 "십생구사지신(十生九死之臣)을 신례(臣禮)로 부를 수 없으니 소원대로 하라"는 조서를 내렸다.그 후 경덕왕은 그가 여남(汝南)에서 왔다고 하여 남씨(南氏)로 사성(賜姓)하고 이름을 민(敏)이라 고쳐 부르게 하였으며 영양현(英陽縣)을 식읍(食邑:공이있는 사람에게 고을의 조세를 개인이 받아쓰게함)으로 내리고 후에 영의(英毅)라는 시호(諡號)를 내렸다.그로 인하여 우리나라 남씨(南氏)가 시원을 이루게 되었고,수많은 인재를 배출하여 명문의 지위를 굳혀왔다. 문헌에 의하면 남씨(南氏)의 본관은 60여본(本)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모두가 같은 후손들로 살고 있는 지명(地名)이며 현존하는 관향은 영양(英陽).의령(宜寧).고성(固城) 3본이다.남씨(南氏)는 서기 1200년대 후기에 시조인 남 민(南敏)의 후손 3형제가 각각 중시조(中始祖)로 갈라져서 맏형인 홍보(洪輔)가 선조(先祖)의 대(代)를 이어 영양(英陽)에,둘째 군보(君甫)는 의령(宜寧)에,막내 광보(匡甫)는 고성(固城)에 정착하여 살면서 3계통으로 분관(分貫)하였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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