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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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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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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노씨(魯氏)는 강릉.강화.경주.고환.나주.만경.광주.광만.밀양.선성.신흥.옹진.전주.진강.진주.창원.충주.풍기.풍덕.함종.함평.함흥 등 23개의 본관에, 2000년 인구조사때는 총 67,032명이었다.우리나라 노씨는 본관은 다르나, 그 뿌리가 하나임을 세보(世譜)에서 밝히고 있으며,노씨의 대성(大姓)으로는 함평노씨.강화노씨.광주노씨.밀양노씨이다.노씨(魯氏)의 선계(先系)는 중국 은나라 태사(太師:고려때는 정1품)인 기자(箕子)와 함께 우리나라에 들어온 노계(魯啓)의 후손으로 전한다.(기자와 800의사가 함께 들어왔다 함)그뒤 여러 변란을 겪어 오면서 비조(鼻祖)의 이름이나 관작(官爵,벼슬 이름이나 작위)을 알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중국의 노씨(魯氏)는 주(周)무왕의 동생 주공(周公)의 아들 백금(伯禽)이 노후(魯侯)에 봉해짐으로써 그 후손들이 봉작된 고을 땅이름인 노(魯)를 성씨로 삼았다고 한다.우리나라 노씨는 관향은 다르지만,뿌리가 하나임을 관향별 세보(世譜:족보)에서 밝히고 있다. 강화노씨세보(江華魯氏世譜:병진보 丙辰譜) 서문에는, 애왕조에 경제를 발전시키고 예속(禮俗)의 교화(敎化)에 공을 세워 강화군(江華君)에 봉해짐으로써 강화노씨(江華魯氏)가 비롯되었으며, 고려 충숙왕때 노충(魯 )의 아우 노목(魯穆)이 함평군(咸平君)에 봉해져 함평노씨로 분관(分貫)되었다고 하였다. 함평노씨대동보(咸平魯氏大同譜:신축보 辛丑譜) 서문에도, “우리 비조(鼻祖)께서 기성(箕聖)을 따라 한국에 들어와 강화(江華)로 본(本)을 삼고 현족(顯族:현달한 씨족)이 된 지 오래다. 고려에 이르러 시중공(侍中公:종1품정승)이 원훈(元勳)으로서 함풍군(咸豊君)에 이봉(移封,가수군 嘉樹君)되어 함풍(咸豊)이란 본이 여기서 시작되었다“고 하였다.노씨(魯氏)는 1985년의 인구조사에서 1만 3063가구에 전국 가구 구성비 0.1 %로 당시의 274성씨 중 61위를 차지하였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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