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하위메뉴 바로가기

세계 孝 중심지 향한 첫 발, 인성교육과 뿌리의식 - 孝 !World

성씨유래검색

  • 성씨

    노(魯)

    문중

    노(魯)

  • 유래

    강화노씨(江華魯氏)는 고려 명종 때 이부상서(吏部尙書:정3품장관,조선때는 정2품 이조판서)를 지내고, 고종때 몽고군이 침입하여 강화(江華)로 천도(遷都)할 때 강화현령(江華縣令종5품수령)으로 공을 세워 강화군(江華君)에 봉해진 노용신(魯龍臣)을 시조로 받들고 식읍(食邑나라에 공을 세운 사람에게 고을의 조세를 개인이 받아 쓰게 한것)으로 하사(下賜)받은 강화에 정착세거하며 관향(貫鄕)을 강화(江華)로 하였다.이때부터 강화노씨(江華魯氏)의 문호(門戶)가 열리게 되었고, 노용신의 아들 노유(魯維)는 고려조에서 상서(尙書:6조의 정3품장관)를 지냈으며,손자 노충(魯沖)은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정령을 출납하고 궁중을 숙위하던 지충추원사를 고친 추밀원의 종2품)를 역임하여,평장사(平章事:정2품부총리)를 지낸 노중의 아들 노몽량(魯夢良)과 함께 대를 이어 가문을 중흥시켰다. 강화노씨(江華魯氏)는 조선시대에 무과(武科:무관을 뽑던 과거로 시험은 무예와 병서)에 3명,사마시(司馬試:생원.진사를 뽑던 과거)에 5명 등 8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했다.강화노씨는 2000년 인구조사에 의하면 총 4,224가구에 13,499명이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목록
만족도조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

자료관리 담당부서 : 효문화마을관리원 > 뿌리공원과 > 뿌리공원담당 연락처 : 042-288-8312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