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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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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흥단씨는 단기(段璣)를 시조로 받들고 있다.대흥단씨유사(大興段氏遺事)에 의하면,1393년(태조2)에 중국에서 사신으로 와 충청도 대광(大光)에서 20여년간을 살면서 돌아가지 않고 3남1녀를 둔 뒤 죽었다고 적혀 있다.그런데 1987년에 발간된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센서스에는 대흥단씨(大興段氏)가 현존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런데 대흥단씨 기유보(己酉譜,1961년)서문에는 "우리 시조가 중국에서 건너와 충청도 대흥(大興)에 터를 잡았으나 자손들이 정처없이 여러 곳에 흩어졌고, 그 수도 불과 십수가(十數家)에 불과했다"고 하였다. 결국 선조(宣祖)연간까지 그곳이 세거지였음을 알 수 있다. 그 뒤 정산군(定山郡,청양군 정산면) 지방에도 흩어져 살았다고 한다.주요세거지는 대흥현(大興縣)이었다. 대흥단씨세보(大興段氏世譜,기유보己酉譜1961년)에 보면 7세손까지의 묘영(墓塋)이 대흥군 남산리(南山里) 등지에 집중되어 있다. 대흥은 지금의 예산군 광시면(光時面)이다. 백제때는 임존성(任存城),신라 때 임성군(任城郡)이라 고쳤고, 고려초에 대흥군(大興郡)으로 바뀌었다.숙종7년에 현종(顯宗)의 어태(御胎)를 묻고 군(郡)으로 승격시켰다.연안단씨(延安段氏,연악)연안단씨(延安段氏)는 단유인(段由仁)을 시조로 받든다.단씨의 본관(本貫)은 연안단씨(延安段氏)가 가장 많고,그 다음으로 풍덕(豊德),청주( 州),전주(全州),고산(高山),강릉(江陵),강음(江陰),황주(黃州),가음(加音),화산단씨(花山段氏)등이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 기록되어 있다.연안은 황해도 연백군 일원의 옛지명으로,1413년(태종13)에 연안도호부가 되었고,1895년(고종32)에는 지방제도 개정으로 연안군이 되었다.1914년 군.면 폐합으로 연안군은 다시 배천군(白川君)과 합하여 연백군이 되었다.연안단씨는 단필식(段必式,1631년생)이 1666년(현종 7)에 사마시(司馬試:생원.진사를 뽑던 과거)에 3등으로 급제하였다.연안단씨는 2000년 인구조사에서 총 48가구에 165명이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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