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하위메뉴 바로가기

세계 孝 중심지 향한 첫 발, 인성교육과 뿌리의식 - 孝 !World

성씨유래검색

  • 성씨

    두(杜)

    문중

    두(杜)

  • 유래

    두릉두씨(杜陵杜氏)는 시조를 달리하는 두 계(系)로 나뉜다. 중국 주나라 성왕때 두지방에 세거한 연유로 두씨로 성관(姓貫)한 것을 중국 두(杜)씨의 시원(始源)으로 하여,고구려초의 인물 두로(杜魯)도 그 후손이라고 한다.두릉(杜陵)은 중국에 있는 지명으로,장안(長安)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산서성(山西省)에 속해 있다.그뒤 고려조에 우리나라에 정착,두릉두씨(杜陵:만경두씨 萬頃)의 시조가 된 두경녕(杜慶寧)계와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에 정착,시조가 된 두교림(杜喬林)계가 그것이다.1.두경녕계(杜慶寧系) 두경녕이 중국 북송(北宋)때 병부상서(兵部尙書:정3품국방장관)로 있을때 세자 계승 문제로 논란이 일자 정론을 간(諫)하였으나 셋째 아들인 진종(眞宗)이 즉위하자 화를 입고, 소주자사(蘇州刺史:중국의 지방 관직으로 한(漢)나라 때는 민정과 군정의 장관을 겸했으며,수.당나라때는 주지사(州紙事)였고,고려때는 외관(外官)의 하나로 성종 14년(995)에 설치되었다가 목종 8년(1005)에 폐지함)로 좌천되어 임지로 가던 중,배가 풍랑을 만나 서기 1004년(목종 7)에 궁지도(宮地島.고군산열도)에 표착 세거하게 됨으로써,우리나라 두릉두씨(杜陵杜氏)의 시조가 되었으며, 전북 김제의 입향조가 되었다.궁지도(宮地島)는 당시 만경현(萬頃縣)에 속했던 섬으로 흔히 만경두씨(萬頃杜氏)로 부르기도 한다. 만경(萬頃)은 전북 김제군 만경면(萬頃面)으로 통일신라 때는 만경현(萬頃縣)이라 하였다. 고려 문종 때 현내(縣內) 주산(主山)에 2세조 두지건(杜之建)을 장사(葬事)지냄으로써 산 이름을 두산(杜山) 혹은 두릉(杜陵)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예종때는 두산현(豆山縣)으로 하였고 조선 태종 때 다시 만경현(萬頃縣)으로 바뀌어 그뒤부터 두릉현(杜陵縣).만경현(萬頃縣).두산현(杜山縣)등으로 불리게 되었다. 두경녕계는 옥구파(沃溝派), 금구파(金溝派), 김포파(金浦派), 진양파(晋陽派), 대구파(大邱派)등이 있으며,두경녕의 6세손으로 고려 명종 때 무신으로 조위총의 난을 평정한 두경승(杜景升)을중시조로 받든다.두경승(杜景升)의 후손들은 만경에 세거하다가 1700년경부터 금구(金溝)로 이거하였다고 하며 산소도 망배(望拜)만 해오다가 일제강점기부터 묘소도 수호하고 시제도 지내고 있다.이름을 떨친 후손으로는 고려시대에 문하시중(門下侍中:종1품 정승)에 이어 중서령(中書令:종1품으로 시중을 지낸 사람이 맡음)에 이른 두경승[杜景升, ∼1197년(고려 신종 즉위해)]은 고려의 무신으로 정승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또한 두수롱(遂籠).두방(邦).두영(瑛).두현(玹).두무지(戊枝) 등이 배출되고,조선시대에는두승손(承孫).두헌(憲).두사순(思順).두사근(思謹) 형제,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집하여 순절한 두정란(杜廷蘭).두정훈(廷薰).두정래(廷萊)의 3형제가 나왔다.또 인조때 도총관(都摠管:오위의 정2품)을 지낸 두양필(杜良弼), 임진왜란과 병자호란때 전공을 세워 진무1등공신에 책록된 두기문(起文), 정조 때의 문필가 두만형(杜萬馨) 등이 있다. 시조묘는 전북 부안군(扶安郡) 하서면(下西面) 청호리(淸湖里)에 있으며 매년 음력 10월 3일 향사(享祀:제사)한다.두경녕계는 두시재(杜詩在,1826년생)가 1873년(고종10) 식년(式年정기과거시험)사마시(司馬試:생원.진사를 뽑던과거)에 3등으로 합격하는 등 2명의 급제자가 있다.현재 김제시 만경읍에 세거하는 후손들은 외지에서 이거해온 사람들로 2000년 인구조사때 김제시내에 거주하는 두릉두씨는 62가구에 239명이었다.2.두교림계(杜喬林系)시조 두교림(杜喬林,자(字)정덕 正德)은 명나라 사람으로 기주자사(冀州刺史:지방장관)를 지냈다. 두교림(杜喬林)이 우리나라 두릉두씨(杜陵杜氏)의 시조가 된 것은 그의 아들 두사충(杜師忠)이 임진왜란때 이여송(李如松)장군을 따라 구원군으로 와 수륙지주주사(水陸指晝主事)로 활약한 뒤 우리나라에 눌러 살게 됨으로써 두릉두씨(杜陵杜氏)의 시원(始源)을 이루었고 아버지인 두교림(杜喬林)을 시조로 삼은데 연유한다. 두교림계는 원파(原派), 학생공파(學生公派), 통정공파(通政公派)로 대별한다. 통정대부 두공묘표(通政大夫杜公墓表:정3품당상관)에 보면 두교림(杜喬林)을 1세로 하는 자손들은 임진(壬辰)년에 조선을 원조하기 위해 명장(名將) 진인(陳璘)을 따라왔던 두사충(杜師忠)이 대구땅에 머물러 살았던 이래 그곳에 세거하게 되었다.두사충(杜師忠)의 4대손 두여환(杜如煥)이 대구 남산(南山)에서 성주(星州)로 이거한 사실이 계묘보(癸卯譜)에 나타나 있고,3세 두일건(杜逸建)은 함흥에 정착하여 함흥을 비롯한 함주군(咸州郡)에 터를 굳혔다.두경승 묘는 인천시 중구 운북동151-8번지에 있고 부인 김해김씨 묘와 쌍분을 이루고 있다.인구조사에 의하면 두릉두씨는1985년에는 총 1,163가구 4,838명이었고,2000년에는 1,741가구에 5,701명이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목록
만족도조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

자료관리 담당부서 : 효문화마을관리원 > 뿌리공원과 > 뿌리공원담당 연락처 : 042-581-4445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