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하위메뉴 바로가기

세계 孝 중심지 향한 첫 발, 인성교육과 뿌리의식 - 孝 !World

성씨유래검색

  • 성씨

    명(明)

    문중

    명(明)

  • 유래

    서촉명씨(西蜀明氏)는 명옥진(明玉珍)을 시조로 받들며 세계(世系)를 잇고 있다.문헌에 따르면, 시조 명옥진(明玉珍)은 원나라 말기에 촉(蜀)에 살다가, 운남(雲南,베트남)을 공격하여 함락시켜 대하국(大夏國)을 세우고 왕(王)이 되었다. 그는 왕이 되어 선정(善政:바르고 좋은 정치)을 베풀다가,1366년(공민왕16)에 죽고, 아들 명승(明昇)이 왕위를 계승하여 선정하였으나,1371년(공민왕20) 명나라 주원장(朱元璋)에게 나라를 빼앗겨, 명나라가 천하를 통일하게 되었다. 이듬해 명승(明昇)이 한주(漢主) 진우량의 아들인 진리 등 남녀 27명을 거느리고 고려에 귀화하였다. 공민왕은 그에게 집과 노비를 내려 왕족(王族)의 지위를 지켜주었으며,국빈의 예를 갖추었다. 그는 송도(松都) 북부 이정리(梨井里:흥국사 북쪽 산 밑)에 정착하고, 총랑(摠郞:정4품차관) 윤희종(尹熙宗)의 딸과 혼인하여 살면서 아들 4형제를 낳아 우리나라 명씨(明氏)의 시원(始原)을 이루었다.명승(明昇)은 이성계(李成桂)와 친분을 맺어 두터운 교분으로 자주 바둑을 즐겼다고 하며,그의 어머니 팽씨(彭氏)는 이태조(李太祖)가 등극할 때 용포곤의(龍袍袞衣:임금이 입던 정복, 황색이나 적색의 비단으로 지으며 가슴과 두 어깨에 발톱이 다섯 개 달린 용의 무늬를 금실로 둥글게 수 놓음)를 지어 올려, 태조가 감읍(感泣)했다고 한다. 태종 때 명승(明昇)은 화촉군(華蜀君)에 봉군되어, 충훈세록(忠勳世祿)의 예우를 받았으며,영조때는 그의 후손들에게 병역과 납세를 면제토록 하였다.명씨(明氏)의 후손들은 명옥진(明玉珍)을 시조로 받들고, 그가 나라를 세우고 황제로 있었던 중국의 서촉(西蜀)을 본관으로 하였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목록
만족도조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

자료관리 담당부서 : 효문화마을관리원 > 뿌리공원과 > 뿌리공원담당 연락처 : 042-288-8312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