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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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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학을 개척한 우 탁(禹倬)은「동방에 역학을 처음 들여온 인물」부자(父子) 정승 우중대.우천석.우장춘 박사독립지사의 가문단양우씨(丹陽禹氏)는 우현(禹玄)을 시조로 받들고 있다.문헌에 따르면 시조 우현(禹玄)은 하나라 우왕의 후손이라고 한다.우현(禹玄)이 고려때 우리나라에 들어와 단양(丹陽)에 정착하고 살면서,서기 1014년(현종 5년) 진사(進士:소과에 급제한 사람)로 문과(文科:문관을 뽑아쓰던 과거.대과)에 급제하고 정조(正朝:고려때 관제로 왕건의 직속부하 중심의 호족세력으로 조직된 문.무관의 위계로 총16관계 중 제12위) 호장(戶長:고을아전의 맨윗자리)을 거쳐 여러벼슬을 지낸 후,평장사(平章事:중서문하성등의 정2품부총리)에 추증되었다.그의10세손 우현보가 공양왕때 단양부원군(丹陽府原君)에 봉해지자,후손들이 본관을 단양(丹陽)으로 하였다.단양우씨(丹陽禹氏)는 조선시대에 문과(文科:대과)에 32명,무과(武科:무관을 뽑던 과거.시험은 무예와 병서로 3년마다 실시되었으며 초시.복시.전시의 3단계였음)에 30명,사마시(司馬試:생원.진사를 뽑던 과거)에 132명,율과(律科:형률에 능통한 사람을 등용하던 잡과)에 2명 등196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한 명문(名門)으로, 인구조사에서 2000년에는 50,789가구에 162,479명이었다.단양우씨는 문헌의 실전(失傳:묘지나 고적등이 대대로 내려온 사실을 알수없게 됨)으로 선계(先系)는 자세히 알 수 없으며, 우리나라 우씨(禹氏)의 연원은 우현(禹玄)이 고려초에 중국에서 건너와 충북 단양(丹陽)에 정착 세거하면서 부터라고 한다.대구시 달서구에 있는 월곡역사박물관은 아파트 동네에 송림 언덕과 대나무로 울타리를 친 시민공원을 겸한 박물관이다. 우현보의 후손들이 마련한 것으로, 한 문중이 세운 우리나라 유일의 박물관이라고 한다.우배선(禹拜善)이 임진왜란때 의병을 일으켜 공신이 되고, 그 후손이 박물관 동네에 모여 살다,아파트가 들어서면서 그 보상금으로 건립한것이라고 한다.우현(禹玄)은 호장(戶長:고을아전의 맨윗자리)을 지냈으며,평장사(平章事:정2품부총리)에 추증되었다.시조의 10세손인 우현보(禹玄寶)가 정당문학(政堂文學:종2품재신)을 거쳐,찬성사(贊成事:고려때 문하부의 정2품부총리)를 지내고 단양부원군(丹陽府院君)에 봉해져,후손들이 우현(禹玄)을 시조로 받들고, 본관을 단양(丹陽)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한편 문헌에는 단양외에도 예안.영천.강주우씨 등 40여본이 기록되어 있으나,모두 세거지에 불과하며 현재는 단양우씨(丹陽禹氏)단일본이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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