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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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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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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강이라는 하나의 이름이 해동을 밝히고 종산의 한 머리칼은 수양과 함께 푸르리세조가 모 순을 회유하려 '모씨의 중흥조 모 순'에게 보낸 시(詩)우리나라 모씨(牟氏)의 연원은 중국 관서지방 홍농(弘農) 출신인 모경(牟慶)이 고려때 귀화하여 뿌리를 내리게 되면서 부터이다. 함평모씨세보(咸平牟氏世譜)에 의하면, 모경(牟慶)은 북송(北宋)의 휘종조(徽宗朝:북송의 8대왕,재위:1101~1125)에 병부상서(兵部尙書:정3품국방장관) 겸 호북경서(湖北京西) 선무사를 거쳐 이부상서(吏部尙書:정3품장관)를 지내고, 북송의 마지막 왕조인 흠종(欽宗)때 대사마대장군(大司馬大將軍:조선조에서는 병조판서를 주나라때의 '사마' 벼슬에 해당한다 하여 이르던 말이며,대장군(大將軍:고려때는 종3품)에 올랐다.고려에서 척신(戚臣) 이자겸(李資謙)이 반역을 꾀하고 왕비(王妃)를 시켜 수차 왕을 독살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을 때, 모경이 사신(使臣)으로 왔다가 이 모반 음모를 저지하고, 왕권(王權)을 바로 세우는 데 공(功)을 세워 1등공신에 서훈되었다. 그후 귀국하여 홍농후(弘農侯)에 봉해졌으나,금나라가 송경(宋京)을 침입하고 휘종과 흠종 두 황제를 납치해 가자, 고려에 도움을 청하러 나왔다가 송나라가 패망하고 귀국길이 막히자 고려에 귀화하여 그대로 머무르게 되었다.고려에서는 이자겸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功)을 세운 모경을 후대하여 평장사(平章事:정2품부총리)의 벼슬을 내리고,모평군(牟平君,모평은 함평)에 봉하여 우리나라 모씨(牟氏)의 시원이 되었다.인구조사에서 함평모씨는 1960년 국세조사때는 9,120명,1985년에는 3,656가구 15,539명,2000년에는 총 5,546가구 17,939명이었다.함평(咸平)은 전라남도 서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함풍(咸豊)과 모평(牟平) 두개 현이 합쳐진 지명이다. 1409년(태종9) 모평현(牟平縣)과 합하여 함평현으로 개편하였다. 기성(箕城)이라는 별호가 있었다.1896년 전라남도 함평군,1963년 함평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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