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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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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민씨(閔氏)의 본관은 여흥민씨.황려민씨(黃驪閔氏).영주(榮州).여주(驪州).해남 등 32본관으로 문헌에 전해지고 있으나 모두가 같은 뿌리로 <여흥민씨>의 세거지명이라고 한다.2000년 인구조사에서는 경주민씨.청주민씨.대전.해남.쇄주.여주.여흥.영운.영원.영인.정선.창원민씨 등 총 12개의 본관에 159,054명이었다.민씨(閔氏)의 유래(由來)에 대해서는 양설(兩說)이 있다. 그 하나는 중국 민자건(閔子騫.민손 閔損)의 자손이라 했고, 또 다른 설(說)은 경기도 여주(驪州)에 있는 민굴(閔窟)에서 나왔다는 것이다.그러나 민굴설(閔窟說)은 태고시대 신화(神話)에나 나오는 신빙성이 없는 말이며 중국에서 나왔다는 설(說)은 시대적으로 보나 문헌상(文獻上) 증거가 있어 과학적이라고 해석(解釋)된다고 밝히고 있다.<여흥민씨 대종중><여흥민씨대종중>은 고려때 동국이상국집을 지은 이규보(李奎報,백운거사)가 상시민공식(常侍閔公湜,상시는 우산기상시(정3품) 민식)에게 올린 시(詩)에 "세가전벌열(世家傳閥閱) 계출(系出) 비후현(費候賢)"이라고 하여, 세가의 전해온 벌열은 비후(費侯:비후는 노나라 비(費)땅의 수재 守宰)인 민자건(閔子騫)에게서 나왔다고 하였고,또 학자들이 민씨(閔氏)를 문장(文章)으로 표시할 때는 요요 화주(華胄)라 하고(요요 화주(華胄)는 중국에서 나온 민자건(閔子騫)의 자손이라는 말) 혹은 문수화벌(汶水華閥)이니 문수후예(汶水後裔)라고 많이 쓰고 있다.문수(汶水)는 논어(論語)에 민자건(閔子騫)이 오기재문수지상(吾基在汶水之上)이라 하는 말에 근거한다.또한 일부문헌에는 “”…민씨(閔氏) 계출중국농서(系出中國瀧西) 금지감숙성(今之甘肅省) 난주야(蘭州也) 주경왕시(周敬王時) 서기 1010년전 유민손이한무제시(有閔損而漢武帝時) 유민중숙지고기야(有閔仲叔之古記也) 아여흥민씨지시조(我驪興閔氏之始祖) 민칭도이(閔稱道而) 고려상의봉어(高麗尙依奉御)…라는 문헌으로 보아 중국에서 나왔다는 말이 신빙할 수 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로 설명하고 있다.<번역> <..민씨는 지금의 감숙성 난주인 중국 농서에서 계출되었다.서기 1010년전에 주나라 경왕때 민손이 있었다는 한무제때 민중숙의 옛기록이 있다.우리 여흥민씨의 시조는 민칭도인데 고려 상의봉어 이시다>민자건은 공자(孔子)10 제자의 한사람으로 효성이 지극하고 예절에 밝았다고 한다. 따라서민문(閔門)을 예가(禮家)의 종문(宗門)이라고 한다.출처-(여흥민씨대종중)<편집자주> ...고려상의 봉어(高麗尙依奉御)의 기록은 고려상의봉어(高麗尙衣奉御)의 오기이다. 상의봉어(尙衣奉御)는 고려때 임금의 옷을 공급하는 일을 맡아보던 관청인 상의국(尙衣局)의 정6품 벼슬이 봉어(奉御)임민명기(閔明基)의 "일부내용 반론 및 동몽선습(童蒙先習)은 민제인 찬(撰)"그러나 여흥민문(門)의 뿌리에 대해 다년간 연구(硏究)해온 민명기(閔明基,대전시 유성구 노은동)는 <여흥민씨> 유래에 대해 "민자건의 후예"라고 주장하는 것은 "모화사상"의 발로일뿐 임을 강조한다.더구나 백운거사 이규보선생이 민식(閔湜)에게 올린 시(詩)중에 "..세가전벌열(世家傳閥閱) 계출(系出) 비후현(費候賢)"이라는 구절을 단순 인용하여, 여흥민문의 유래를 단정짓는것은 무리가 많다고 반박하였다.당시 백운거사 이규보는 많은 낭사(?舍)들에게 올린 고율시(古律詩)중 우산기상시(정3품) 민 식(閔湜)에게도 올린 시(詩) ."...계출비후현(系出費侯賢).."의 근거로 민씨의 유래가 "민자건"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것은 지나친 확대해석이라고 말했다.민명기는 여흥민씨 뿌리는 시조 민칭도 이전 상계(上系)에 대한 정확한 문헌을 찾는것은 후대의 몫으로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민명기는 시조 민칭도 이전 상계(上系)의 문헌 발굴을 위해 지속적인 연구를 해나가겠다고 밝혔다.동몽선습(童蒙先習)의 저자 수정보완요구일반적으로 동몽선습(童蒙先習:최초의 아동 교과서)의 저자는 박세무로 알려져왔으나,1981년 서지학자 안춘근이 1543년 평양에서 초간된 민제인 찬(撰) 윤인서 발문의 동몽선습 목판본이 발견되면서 동몽선습의 저자는 민제인(閔齊仁:평안감사 지냄)을 비롯한 공술자(共述者)가 있음이 처음 밝혀졌다.또한 1989년 서지학자 유부현의 석사논문에서도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된 1541년 박세무 친필본이라는 동몽선습 필사본이 1742년 이후에 박세무가 아닌 다른사람이 고의로 박세무가 쓴 것처럼 위작(僞作)한 것이라고 규명하였다.여흥민씨 민명기(閔明基,대전 유성 노은동 521번지 열매마을)는 상기와 같은 사실을 토대로 최근한국학중앙연구원 민족문화대백과사전 편찬실에 <동몽선습>의 잘못된 내용을 수정보완해줄것을 요구하고 증빙자료를 제출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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