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하위메뉴 바로가기

세계 孝 중심지 향한 첫 발, 인성교육과 뿌리의식 - 孝 !World

성씨유래검색

  • 성씨

    민(閔)

    문중

    민(閔)

  • 유래

    문과급제자 234명 명성황후 등 왕비 4명 민영환 민영익민씨(閔氏)의 유래(由來)에 대해서는 양설(兩說)이 있다. 그 하나는 중국 민자건(閔子騫.민손 閔損)의 자손이라 했고, 또 다른 설(說)은 경기도 여주(驪州)에 있는 민굴(閔窟)에서 나왔다는 것이다.그러나 민굴설(閔窟說)은 태고시대 신화(神話)에나 나오는 신빙성이 없는 말이며 중국에서 나왔다는 설(說)은 시대적으로 보나 문헌상(文獻上) 증거가 있어 과학적이라고 해석(解釋)된다고 밝히고 있다.<여흥민씨 대종중><여흥민씨대종중>은 고려때 동국이상국집을 지은 이규보(李奎報,백운거사)가 상시민공식(常侍閔公湜:상시는 우산기상시(정3품) 민식)에게 올린 시(詩)에 "세가전벌열(世家傳閥閱) 계출(系出) 비후현(費候賢)"이라고 하여,세가의 전해온 벌열은 비후(費侯:비후는 노나라 비(費)땅의 수재 守宰)인 민자건(閔子騫)에게서 나왔다고 하였고,또 학자들이 민씨(閔氏)를 문장(文章)으로 표시할 때는 요요 화주(華胄)라 하고(요요 화주(華胄)는 중국에서 나온 민자건(閔子騫)의 자손이라는 말)혹은 문수화벌(汶水華閥)이니 문수후예(汶水後裔)라고 많이 쓰고 있다.문수(汶水)는 논어(論語)에 민자건(閔子騫)이 오기재문수지상(吾基在汶水之上)이라 하는 말에 근거한다.또한 일부문헌에는 ""<…민씨(閔氏) 계출중국농서(系出中國瀧西) 금지감숙성(今之甘肅省) 난주야(蘭州也) 주경왕시(周敬王時) 서기 1010년전 유민손이한무제시(有閔損而漢武帝時) 유민중숙지고기야(有閔仲叔之古記也) 아여흥민씨지시조(我驪興閔氏之始祖) 민칭도이(閔稱道而) 고려상의봉어(高麗尙依奉御)…>라는 문헌으로 보아 중국에서 나왔다는 말이 신빙할 수 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로 설명하고 있다.<번역> <..민씨는 지금의 감숙성 난주인 중국 농서에서 계출되었다.서기 1010년전에 주나라 경왕때 민손이 있었다는 한무제때 민중숙의 옛기록이 있다.우리 여흥민씨의 시조는 민칭도인데 고려 상의봉어 이시다>민자건은 공자(孔子)10 제자의 한사람으로, 효성이 지극하고 예절에 밝았다고 한다. 따라서 민문(閔門)을 예가(禮家)의 종문(宗門)이라고 한다.출처-(여흥민씨대종중)<편집자주> ...고려 상의봉어(高麗尙依奉御:정6품)의 기록은 고려상의봉어(高麗尙衣奉御)의 오기인듯.. 상의봉어(尙衣奉御)는 고려때 임금의 옷을 공급하는 일을 맡아보던 관청인 상의국(尙衣局)의 정6품 벼슬이 봉어(奉御)임.민명기(閔明基)의 "일부내용 반론 및 동몽선습(童蒙先習)은 민제인 찬(撰)"그러나 여흥민문(門)의 뿌리에 대해 다년간 연구(硏究)해온 민명기(閔明基,대전시 유성구 노은동)는 <여흥민씨>의 유래에 대해 "민자건의 후예"라고 주장하는 것은 "모화사상"의 발로일 뿐임을 강조한다.더구나 백운거사 이규보선생이 민식(閔湜)에게 올린 시(詩)중에 "..세가전벌열(世家傳閥閱) 계출(系出) 비후현(費候賢)"이라는 구절을 단순 인용하여 여흥민문의 유래를 단정짓는것은 무리가 많다고 반박하였다.당시 백운거사 이규보는 많은 낭사(?舍)들에게 올린 고율시(古律詩)중 우산기상시(정3품) 민식(閔湜)에게도 올린 시(詩) ."...계출비후현(系出費侯賢).."의 근거로 민씨의 유래가 "민자건"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것은 지나친 확대해석이라고 말했다.민명기는 여흥민씨의 뿌리는 민칭도 이전 상계(上系)에 대한 정확한 문헌을 찾는것은 후대의 몫으로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그는 민칭도 이전 상계(上系)의 문헌 발굴을 위해 지속적인 연구를 해나가겠다고 밝혔다.민명기(閔明基), 동몽선습(童蒙先習)의 저자 수정보완요구일반적으로 동몽선습(童蒙先習:최초의 아동 교과서)의 저자는 박세무로 알려져왔으나,1981년 서지학자 안춘근이 1543년 평양에서 초간된 민제인 찬(撰) 윤인서 발문의 동몽선습 목판본이 발견되면서, 동몽선습의 저자는 민제인(閔齊仁:평안감사 지냄)을 비롯한 공술자(共述者)가 있음이 처음 밝혀졌다.또한 1989년 서지학자 유부현의 석사논문에서도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된 1541년 박세무 친필본이라는 동몽선습 필사본이 1742년 이후에 박세무가 아닌 다른사람이 고의로 박세무가 쓴 것처럼 위작(僞作)한 것이라고 규명하였다.여흥민씨 민명기(閔明基,대전 유성 노은동 521번지 열매마을)는 상기와 같은 사실을 토대로 최근 한국학중앙연구원 민족문화대백과사전 편찬실에 <동몽선습>의 잘못된 내용을 수정보완해줄것을 요구하고 증빙자료를 제출했다.이규보의 <동국이상국 전집 제8권>에 실려있는우산기상시(右散騎常時정3품) 민식(閔湜)에게 올린 시(詩)저자 이규보(李奎報,1168~1241.백운거사)-고려의 문인이며 문신으로 명문장가다.그의 시풍은 당대를 풍미하였고 저서에 <동국이상국집> <국선생전>이 있으며, 작품에는 <동명왕편>이 있다. *내성(內省)의 제랑(諸郞:모든 낭사에게 올림)에게 올리다* 무오년(戊午年:서기 1198년)내성(內省)은 내사문하성(內史門下省)으로 고려때 최고중앙의정기관으로 문하성을 합한명칭이며 뒤에 내사성을 중서성(中書省)으로 개칭하여 중서문하성으로 고침.최고벼슬은 종1품 내사령이고 문하시중을 지낸사람이 맡음우산기상시(右散騎常時:고려때 중서문하성의 낭사(?舍)로 정3품 벼슬.뒤에 우상시로 고침) 민식(閔湜,후에 형부상서 지냄)에게 올리다예전부터 대대로 벌열로 내려와(世家傳閥閱)/조상에는 비후 같은 분을 모셨네(系出費侯賢)*비후(費侯)-비후는 민자건을 노(魯)나라 비(費) 지방의 수재(守宰)로 삼은것을 말한듯*난옥에 쌍 가지 빼어나(蘭玉雙枝秀)/ 무지개처럼 한 기운이 연했구나(虹霓一氣連)벼슬길에 형제가 순탄히 승진되어(雲梯同坦步)/ 좋은 자리 서로 번갈아 하네(仙省迭相遷)나무에는 닭이 교대해 깃들고(樹代鷄新舊)/ 하늘에는 기러기가 앞뒤로 나는구나(天分雁後先)우산기(右散騎:우산기상시)는 최고 영광스러운 자리니(右貂榮最劇)/ 방승하는 은총 한 몸에 듬뿍 받았네(旁乘寵何偏)/오색 실로 임금의 곤룡포(袞龍袍)를 꿰맸으며(五色絲縫袞)/ 시편(詩篇)은 삼장(三丈)의 눈처럼 청신하구나(三條雪入篇)/주금이 이제부터 뛰어나오게 되었으니(鑄金從 躍)/ 새 새끼가 날아 다니도록 도와 주오(翼 助騰騫)/도리(桃李)밑에 나 있는 오솔길이 사랑스러워(爲愛蹊成下)/ 화벽(和璧)을 가지고 외람되게 앞을 바치오( 將璧至前)화벽(和璧:화씨지벽 和氏之壁)은 천하의 명옥(玉)으로 한비자가 어리석은 군주를깨우치기 위해 화씨의 옥(玉)을 비유로 설파한것.조만 간에 송곳을 주머니에 넣어 주시고(囊錐容早晩)/ 환선은 설마 중도에 안버리실테고(紈扇豈中損) *환선(紈扇)-얇은 깁으로 만든 부채더구나 우리는 척분(戚分:성은 다른데 일가가 되는 관계)이 있는 처지니( 接 莩幸)/평생에 그 인연을 믿으렵니다(平生恃淺緣)<편집자 주>민씨(閔氏)는 중국 농서현에서 나온 성씨(姓氏)로 성인(聖人) 공자의 10 제자 중 한사람인 민손(閔損,민자건)의 후손 민칭도(閔稱道)가 고려 중엽에 사신으로 왔다가 귀화하여 여흥(여주)에 정착한 것이 우리나라 민씨(閔氏)의 시초가 된다.민씨(閔氏)의 본관은 여흥을 비롯하여 황려.영주.여주.해남.대전민씨 등 32본이 있는 것으로 전해지나, 모두가 같은 뿌리로 여흥민씨(驪興閔氏)의 세거하는 지명이라고 한다.민씨는 시조 민칭도(閔稱道)의 증손 민영모(閔令謨)가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정2품벼슬)를 거쳐 태자태사(太子太師:정1품)에 이르렀으며,신종때 형부상서(刑部尙書:정3품 법무장관)에 오른 아들 민식(閔湜)과 판병부사(判兵部事)와 태자소보(太子少保:동궁의 2품으로 태자 스승)를 지낸 민공규(閔公珪) 형제가 가문의 양대 산맥을 이루어 가세를 크게 일으켰다.상서공(尙書公) 민식(閔湜)의 후손에서는 증손 민지(閔漬)가 여흥군(驪興君)에 봉해졌고, 문장이 뛰어나 [세대편년절요]와 [본국편년강목]을 저술했고,아들 민상정(閔祥正)과 민상백(閔祥伯)이 가문을 빛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목록
만족도조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

자료관리 담당부서 : 효문화마을관리원 > 뿌리공원과 > 뿌리공원담당 연락처 : 042-581-4445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