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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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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박씨(慶州朴氏)는 신라 제5대 婆裟王(파사왕:재위:80~112)의 38세손인 박앙을 1세조로 받들고 있다. 문헌과 경주박씨세보(慶州朴氏世譜)에 의하면,그는 고려 말에 국자직학(國子直學:종9품)과 예문관응교(藝文館應敎:공방(工房)을 관장하고 지제교를 겸임한 정4품)를 역임한 박자신(朴自信)의 아들로 1451년(조선 문종 1)문과(文科:대과)에 급제하여, 홍문관(弘文館)의 저작(著作:국사의 수찬을 담당한 홍문관의 정8품으로 경연에 참석할 수 있었음)을 지냈으나,계유정난(癸酉靖難)으로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어린 단종(端宗)을 쫓아내고 왕위(王位)를 찬탈하자,이를 개탄하여 벼슬의 뜻을 버리고 생육신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과 더불어 수양산(首陽山)으로 들어가 충정공(忠貞公) 박심문(朴審門)등과 함께 도의(道義)를 강론하였으며,만년에 함안(咸安) 서쪽 평광리(平廣里) 백이산(伯夷山) 아래에 은거하여 절의를 지켰다고 한다. 후손들은 박앙을 1세조로 받들고,선조(先祖)의 원향지(原鄕地)인 경주(慶州)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잇게 되었다.박앙의 맏아들 박명기(朴命基)가 문과에 급제하고, 신천군수(信川郡守:종4품수령)로 치적(治績)을 쌓아 표리(表裏:왕이 신하에게 내린 옷의 겉감과 안감)를 하사(下賜)받았으며,합천군수(陜川郡守)로 나가서는 청백(淸白)함으로 이름을 떨쳤다. 둘째 아들 박여회(朴麗檜)는 가솔을 데리고 신풍현(新豊縣)으로 이거(移居)한 후 소식이 불명(不明)하며,막내 박여귀는 경북 안동(安東)지방으로 옮겨 살아 이들 3형제가 경주박씨의 3대산맥(三代山脈)을 이루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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