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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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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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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씨 중의 박씨, 박 은 암행어사 박문수, 박정희 조선조 문과에 57명아버지를 탄핵하여 파면한 박경업고령박씨(高靈朴氏)는 신라왕족의 후예로 박혁거세(朴赫居世)의 29세손인 경명왕(景明王:제54대 왕,재위:917∼924)의 둘째 아들 고양대군(高陽大君) 박언성(朴彦成)을 1세조로 하고 후대로 내려와 어사공(御史公) 박섬(朴暹),부창정(副倉正)박환(朴還), 주부(主簿:6품) 박연(朴連)을 각각 기일세(起一世)하여 관향(貫鄕)을 고령으로 삼았다.한편 부창정(副倉正)은 983년(성종2) 2월 12목(牧)을 설치하면서 향직명을 개정하여 제1부의 장(長)인 당대등(堂大等)을 호장(戶長:고을 아전의 맨 윗자리), 제2부인 병부(兵部)를 사병(司兵),제3부인 창부(倉部)를 사창(司倉)이라 하고 사창에는 창정(倉正).부창정.창사(倉史)를 두었다.또한 1018년(현종9) 전국의 향직을 제한하기 위하여, 주현(州縣)의 대소(大小)에 따라 향직 정원수를 규정하였다. 300정(丁) 이상 되는 주현에 창정.부창정 각 2인씩,100정 이상 되는 주현에 창정.부창정 각 1인씩,또한 동서 제방어사진현(東西諸防禦使鎭縣)의 100정 이상인 곳에는 창정.부창정 각 2인씩,100정 이하인 곳에는 창정.부창정 각 1인씩을 두었다. 이들은 주.현의 재무(財務)에 관한 일을 맡아보았다.고려후기에서부터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수 많은 명신현관(名臣賢官)을 배출하여 명문(名門)의 반열에 올랐던 고령 박씨는 비록 수는 많지 않지만 밀양(密陽).반남(潘南)에 이어 세번째로 손꼽힌다.고령박씨는 조선시대에 문과(文科:대과.문신을 뽑아쓰기 위한 시험으로 3년마다 초시.복시.전시로 나뉘어 보았음)에 57명 무과(武科:무관을 뽑던 과거.시험은 무예와 병서로 3년마다 실시되었으며 초시.복시.전시의 3단계였음)에 9명 사마시(司馬試:생원.진사를 뽑던 과거)에 147명 등 모두 213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하였고 1명의 상신(相臣:정1품 정승)과 4명의 청백리를 배출했다. 고령(高靈)은 경상북도 남서쪽에 위치한 지명이며 대가야국의 중심지로 이진아고왕(伊珍阿鼓王:內珍朱智)으로부터 도설지왕(道設智王)까지 16대 520년간을 계승 해 오다가 562년(신라 진흥왕 23) 신라에 병합되었다.서기 757년(경덕왕 16)에 고양군(高陽郡)으로 강주(康州:진주)의 관할이 되었다. 1018년(고려 현종 9) 영천현으로 개편되어 경산부(京山府:성주)에 속하게 되었으며 1175년(명종 5)에 감무(監務:작은 현에 중앙에서 파견한 감독관)를 두었다. 1413년(태종 13)에 고양군과 영천현을 고령현(高靈縣)으로 병합하였다. 서기 1895년(고종 32) 지방재정 개정으로 성주군(星州郡)과 현풍군(玄風郡)의 일부를 통합한 고령군이 되었다. 1975년 고령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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