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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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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조왕건의 훈요십조 전수받은 박술희 장군면천박씨(沔川朴氏)는 신라 제5대 파사왕(婆娑王:재위:80~112)의 원손(遠孫)인 박득의(朴得宜)가 고려조에서 삼중대광(三重大匡:정1품품계)으로 대승(大丞:궁예때 태봉의 관직이며 고려 문.무관계이고,995년에 흥록대부로 고친 향직의 셋째 등급)에 이르렀으며,그의 아들 박술희(朴述熙)는 고려초에 삼중대광(三重大匡)으로 태사(太師:정1품)에 올라,면성부원군(沔城府院君,면성은 면천의 고호)에 봉해지자,후손들이 박득의를 1세조로 받들고,관향(貫鄕)을 면천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박씨원류사보(朴氏原流史譜)에 의하면 박술희는 어려서부터 호협하고 용맹스러워,18세에 궁예(弓裔)의 호위병으로 있다가 태조(太祖) 왕건를 도와 고려 창업에 공(功)을 세웠으며 936년(태조19) 후백제 정벌(征伐)때는 보기(步騎:보병과 기병) 1만을 이끌고 진격하여 대첩을 거두었다. 태조는 승하할 때 그를 내전(內殿)으로 불러 훈요십조(訓要十條)를 친히 주며 태자(太字:혜종)를 잘 보필해 달라고 부탁을 하였다고 한다.한편,<훈요10조>는 서기 943년 고려 태조가 그의 자손들에게 귀감으로 남긴 10가지의 유훈(遺訓)으로 신서10조(信書十條).십훈(十訓)이라고도 한다.태조가 총애하던 중신(重臣)인 발술희(朴述熙)를 내전(內殿)으로 불러들여 그에게 주었다고,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고려사에 전한다.주요 내용을 보면 ① 국가의 대업이 제불(諸佛)의 호위와 지덕(地德)에 힘입었으니 불교를 잘 위할 것, ② 사사(寺社)의 쟁탈.남조(濫造)를 금할 것,③ 왕위계승은 적자적손(嫡者嫡孫)을 원칙으로 하되 장자가 불초(不肖)할 때에는 인망 있는 자가 대통을 이을 것, ④ 거란과 같은 야만국의 풍속을 배격할 것, ⑤ 서경(西京)을 중시할 것, ⑥연등회(燃燈會).팔관회(八關會) 등의 중요한 행사를 소홀히 다루지 말 것,⑦ 왕이 된 자는 공평하게 일을 처리하여 민심을 얻을 것,⑧ 차현(車峴,금강 이남) 이남의 금강(錦江) 밖은 산형지세(山形地勢)가 배역(背逆)하니 그 지방의 사람을 등용하지 말 것,⑨ 백관의 기록을 공평히 정해줄 것, ⑩ 널리 경사(經史)를 보아 지금을 경계할 것 등이다.<훈요10조>는 왕실 가전(家傳)의 심법(心法)으로서 태조가 그의 후손에게만 전하기로 되어 있었고, 신민에게 공개될 유훈은 아니었다. 그 내용이 사서(史書)에 실린 뒤로는 식자간에 널리 알려져 흔히 군왕을 간하는 신하들의 전거(典據)가 되었다.그 후 면천박씨(沔川朴氏)는 신기도령(神騎都令:신기군의 총지휘관으로 신기도령 및 지유좌우경궁도령,지유좌우정노도령,지유를 설치함)등을 지낸 박주(朴柱:박술회의 손자,도승지지냄)를 중흥조(中興祖)로 받들고 기일세(起一世)하여 왔으며,박주의 9세손 박심(朴諶)이 고려 말에 전서(典書:정3품장관)를 지내고 조선이 개국되자 불사이군(不事二君:한사람이두 임금을 섬기지 아니함)의 충절로 황해도 해주(海州)땅에 은거하며 절의(節義)를 지켰다.면천박씨는 조선시대에 문과(文科:대과)에 1명, 사마시(司馬試:생원.진사를 뽑던 과거)에 5명 등의 과거급제자를 배출하였다.면천은 충청남도 당진군 면천지역으로 1914년 군.면 폐합으로 면천군은 당진군으로 통합되었고 1917년 면천군의 일부였던 마암면이 면천면으로 이름이 바뀌었다.인구조사에서 면천박씨는 1985년에는 966가구에 4,100명이었으며,2000년에는 1,241가구에 3,980명이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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