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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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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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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좌는 목은 이색의 사위로 절의 지켜문장과 청렴으로 명망높았던 박세보영암박씨는 경명왕(景明王:54대왕,재위:917~924)의 큰 이들인 밀성대군(密城大君)박언침의 10세손으로 고려조에서 좌상(左相)을 지낸 박항(朴恒)을 1세조로 받들며 세계(世系)를 계승하고 있다. 박항은 평장사(平章事:고려 때 내사문하성 중서문하성의 정2품부총리)를 지낸 박언인의 손자이고,시중(侍中:백관을 통솔하고 서정을 총리하던 종1품정승)을 지낸 박찬행의 증손이다.문헌에 의하면 1세조 박항(朴恒)의 아들 박통(朴通:초명은 박천흘)이 고려 명종(明宗:재위:1170~1197)때 나라에 공을 세워 영암군(靈岩君)에 봉해지자, 후손들이 밀양박씨(密陽朴氏)에서 분적(分籍)하여 영암을 관향(貫鄕)으로 삼게 되었다고 한다.박항의 손자 박광(朴光)은 문하시중(門下侍中:고려 때 백관을 통솔하고 서정을 총리하던 대신으로 종1품 정승)에 올라 대를 이어 정승반열에 올랐다.그러나 밀양박씨족보(密陽朴氏族譜)와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 등의 문헌에는 박항의 증손으로 고려 고종때 시위장군(侍衛將軍)에 오르고 영암군(靈岩君)에 봉해진 박성제(朴成濟)를 영암 박씨의 관조(貫祖)로 기록하고 있다. 영암박씨는 조선시대에 문과(文科:대과)에 2명 무과(武科:무관을 뽑던 과거로 시험은 무예와 병서)에 13명, 사마시(司馬試:생원.진사를 뽑던 과거)에 14명 등 29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영암(靈巖)은 전라남도에 위치한 지명으로,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영암군(靈巖郡)이 되었으며 995년(고려 성종 14)에는 낭주로 개칭하고 안남도호부가 설치되었다.1018년(현종 9)에는 낭주를 폐하고 안남도호부가 전주로 옮겨가 영암군으로 환원되었다. 영암은 낭산(朗山)이라는 별호도 있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나주부 영암군이 되었고 이듬해인 1896년에 전라남도 영암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영암면과 시종면 등 11개 면으로 분면되었고 1979년 영암면이 읍(邑)으로 승격되었다.인구조사에서 영암박씨는 1985년에는 1,380가구에 5,670명이었으며2000년에는 1,954가구 6,120명이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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