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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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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양박씨에서 태인박씨로 태인박씨(泰仁朴氏)는 신라 제54대 경명왕(景明王)의 세자(世子)인 밀성대군(密城大君) 박언침(朴彦枕)의 8세손으로 고려조에서 도평의사(都評議事)를 지내고 밀성부원군(密城府院君)에 봉해진 박언상(朴彦祥)을 중흥조(中興祖)로 하며, 그의 8세손 박거인(朴居仁)이 공민왕때 소감을 역임한 후 화(禍)을 입고 인의현(仁義縣)으로 유배되어 그 곳에 살게 되자 후손들이 박거인(朴居仁)을 1세조로 받들고 태인(泰仁)을 관향(貫鄕)으로 삼게 되었다. 그후 그의 증손 박연생(朴衍生,호는 돈재 豚齋)이 조선 단종때 충무위 대호군(忠武衛大護軍:종품)을 역임하다 수양대군이(세조) 조카인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려하자 이를 개탄하고 그들을 피해 태인으로 내려가 아버지 박덕명을 모시고 장성군 하남으로 은거하였다.훗날 왕위를 찬탈한 세조가 그를 여러차례 불렀으나 불응하고 다시 담양군 월산(月山)에 사는 사위 이석손(李碩孫)의 집으로 은둔하고 본관도 밀성(密城,밀양)에서 태인으로 바꿔버렸다. 후손들은 박거인을 1세조로하고 태인박씨로 칭하게 되었으며 이후 1687년(숙종 13) 박연생의 9세손 박행중(朴行重)의 서(序)로 태인박씨 족보가 처음 발행되었다. 조선후기인 1801년(신유년)에 이르러,밀성파보(密城派譜,밀양박씨파보)를 수보하면서, 밀성에서 태인으로 하였던 것을 <태인>에서 다시 <밀성>으로 대부분 복관하였다고 하며, 1831년(순조31)에는 박연생의 13세손 박규혁 등이 밀성박씨에서 태인으로 개관하였던것을 밀성(密城:밀양)으로 복관하여 달라는 상소문을 예조(禮曹)에 올린 기록이 있다. 그러나 현재도 박연생의 복관상소파(復貫上疏派)인 밀성박씨 <돈재공파>와 잔류파인 <태인박씨>가 공존하고 있다. 태인박씨는 조선시대에 문과(文科:대과)에 1명,사마시(司馬試:생원.진사를 뽑던과거)에 2명,의과에 1명,음양과에 1명의 급제자가 있다.태인(泰仁)은 전라북도 정읍시에 속해있는 지명으로 태산현(泰山縣)과 인의현(仁義縣)의 합명이다. 940년(고려 태조 23) 빈성을 인의현으로 고치고, 1354년(공민왕 3) 대산군 태산(太山)으로 고치고 인의를 편입하였다. 1930년 정읍면이 정주면으로 되었고,1931년 정주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1995년 정주시와 정읍군이 정읍시로 통합되었다. 인구조사에 의하면 태인박씨는1985년에는 총 140가구 588명,2000년에는 140가구에 456명이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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