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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나라 왕손의 후예 시조(始祖)는 뛰어난 문신이 맡는 한림학사대제학 주지(周砥)와 주절 형제후손에서 인물 많이 배출초계주씨(草溪周氏)족보와 문헌에 따르면 시조 주황(周璜:한림학사)의 후손에서 14세손은 상주주씨,12세손은 장흥주씨,역시 12세손에서 삼계주씨,12세손에서 함안주씨,13세손에서 안의주씨 등으로 본관이 나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 종친회의 주장은 이와는 다르다.관향인 초계는 경상남도 합천군(陜川郡)에 속해 있는 지명으로 경덕왕 때 팔계로 고쳐서 강양군(江陽郡:합천)의 영현으로 삼았다.고려 때는 초계로 하였고,1018년(현종9) 합주(陜州)에 속했다. 명종때 감무(監務:작은 현에 중앙에서 파견한 감독관)를 두었으며,1913년 합천군(陜川郡)에 병합하여 지금은 합천군에 속한 초계면(草溪面)으로 남아있다.문헌에 의하면 초계주씨(草溪周氏)의 시조 주황(周璜)은 주나라 왕손의 후예로 당나라에서 한림학사(翰林學士:고려때는 한림원의 종2품에서 정4품으로 임금의 조서짓는일을 맡아봄.당나라때는 한림원에 속하여 조칙의 기초를 맡아본 벼슬)를 지내다가, 서기 907년(효공왕11) '오계의 난'을 피해 우리나라에 귀화하여 교남 초계부에 정착 세거하자, 후손들은 주황(周璜)을 시조로 받들고 본관을 초계(草溪)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그후 시조 주황(周璜)의 아들 주흥인(周興寅)이 통일신라 효공왕때 집사성대사(執事省 大舍:집사성은 신라때 국가의 기밀과 서정을 맡아보던 최고의 행정기관이고 대사는 신라 17관등의 12등급 사지)에 올랐으며, 이후 시중(侍中:고려때는 종1품)을 거쳐 아간(阿干=아찬:아간은 신라 17관등중 제6품)에 이르렀으며,고려 목종때 보문각 대제학(大提學:고려때 경연과 장서를 맡아보던 관아의 종2품 문형)을 지내 명성을 떨친 손자 주빈(周斌)과 함께 가문을 크게 중흥시켰다.초계주씨(草溪周氏)는 주황(周璜)의 6세손 주세후(周世侯)가 예부상서(禮部尙書:정3품 장관)를 지내고 고려 선종때 임원후등과 함께 황급탑과 국청사를 창건하였으며 <오복상피식>을 개정하는 등 하례식의 예법도를 개정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인구조사에 의하면 초계주씨는1985년에는 1,493가구에 6,331명이었고,2000년에는 2,026가구 6,665명이었다.<초계주씨 집성촌>충남 금산군 제원면 천내리,천안시 동면 동산리,청양군 대치면 이화리,충북 옥천군 안남면 연주리,도덕리,충북 옥천군 이원면 이원리,괴산군 증평읍 남하리,강원도 삼척시 원덕면 호산동 등지이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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