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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씨

    변(卞)

    문중

  • 유래

    우리나라 변씨(卞氏)는 밀양.초계.거창.경주.공주.광산.남원.달성.문화.백음.보령.부용.영천.비안.장성.원주.창녕.진주.청주.팔거 등 20본관으로 문헌에 있으나,초계변씨와 밀양변씨를 제외한 나머지 변씨(卞氏)는 세거지명이라고 본다. 2000년조사때 변씨(卞氏)인구는 총 78,685명이었다.초계변씨.밀양변씨(草溪,密陽卞氏)대제학 변계량은 유능한 인재선발 최초로 호당에 들게 한 인물초계(草溪)는 경상남도 합천군에 속해있는 지명으로 경덕왕이 팔계(八溪)로 고쳐서 강양군(江陽郡:합천)의 영현(領縣)으로 삼았다가 고려때 초계(草溪)로 개칭하였고,1018년(현종 9) 합주(陜州)에 속했다.명종때 감무(監務:작은현에 중앙에서 파건한 감독관)을 두었으며 1316년(충숙왕3) 지군사(知郡事)로 승격하였고,1913년 합천군(陜川郡)에 병합하여 지금은 합천군에 속한 초계면(草溪面)으로 남아있다.변씨(卞氏)는 중국 천수(天水:지금의 감숙성 위천도에 속한 지명)에서 계출(系出)된 성씨(姓氏)라고 하며,주(周)나라 문왕(文王)의 여섯째 아들인 숙진탁(叔振鐸)이 조후(曹侯)에 봉해지고 식읍(食邑)으로 변읍(卞邑)을 하사받아 지명을 따서 성(姓)으로 삼은 것이다.우리나라 변씨(卞氏)는 당나라 천보년간(天寶年間:742∼755)에 예부상서(禮部尙書:정3품장관)을 지낸 변원(卞源)이 743년(경덕왕2)왕명을 받들어 8학사의 한사람으로 효경(孝經:유교경전으로 공자와 그의 제자 증자가 효도에 대하여 논한것을 제자들이 기록한 책) 한질을 가지고 우리나라에 들어와 신라에 정착하여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고 한다.그러나 그후의 세계(世系)가 실전(失傳:사적이나 묘지를 알 수없게 됨)되고 상계(上系)를 고증(考證)할 문헌이 없어 고려 성종때 문과(文科대과)에 급제하고 여러 벼슬을거쳐 문하시중(門下侍中백관을 통솔하고 서정을 총리한 종1품 정승)으로 팔계군(八溪君)에 봉해진 변정실(卞庭實)을 시조로 받들고 본관(本貫)을 초계(草溪)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시조 변정실의 아들 변광(卞光:장파).변요(卞耀:중파).변휘(卞輝:계파) 3형제에서 3갈래로 갈라졌다. 그후 시조의 둘째아들인 변요(卞耀)의 손자 변고적(卞高迪)이 밀양(密陽)에 시거(始居)함으로써 밀양변씨(密陽卞氏)로 분적되었고,후대로 내려오면서 세거지명에 따라 초계(草溪).밀양(密陽)외에도 원주(原州).팔계(八溪).진주(晋州).청주(淸州).경주(慶州).장성(長城).남원(南原) 등 44개 파(派)로 분관(分貫)되었으나,모두가 같은 뿌리이기에 종의(宗議)에 따라 합보(合譜)를 하여 계대(繼代)하고 있다.영남내륙과 호남에 뿌리를 내리고 도덕(道德)과 학문(學問)의 집안으로 명성을 떨친 변씨(卞氏)는 시조의 맏아들 변광(卞光)의 후손인 장파(長派)가 변씨일문의 6할을 차지하여 영남과 호남지방에 많이 살고, 둘째 아들 변요(卞耀)의 후손 중파(仲派)는 경상도지방에,막내 변휘(卞輝)의 후손인 계파(季派)는 합천군(陜川郡)을 중심으로 집중 세거하며 명문(名門)의 기틀을 다져왔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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