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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씨

    봉(奉)

    문중

  • 유래

    1,000여년 뿌리깊은 역사, 신진사림의 도학정치를 추구해 온 인물단종복위에 가담한 봉여해우리나라 봉씨(奉氏)는 하음.함흥.풍기.진주.연안.양성.안협.개성.강화등 총 10여본관에 인구는 2000년에는 강화봉씨 713가구 2,345명,양성봉씨는 128명,진주봉씨 362명,풍기봉씨 139명,함흥봉씨 390명 등 봉씨(奉氏) 인구는 총 11,492명이었다.문헌에는 10여 본관이 있으나 모두 [하음봉씨]에서 분파 된 세거지명이라고 한다.하음봉씨(河陰奉氏)는 고려 인종때 위위시경(衛尉寺卿:고려때 의장과 기물을 관리하던 위위시의 종3품)을 지내고 좌복야(左僕射:상서도성에 속하였던 정2품 부총리)에 올라 하음백(河陰伯)에 봉해진 봉우(奉佑)를 시조(始祖)로 하고 있다.[하음봉씨을축세보(河陰奉氏乙丑世譜)] 서문(序文)에 보면 그의 출생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기록이 전해진다. 고려 예종 원년(睿宗元年) 어느날 경기도 강화군 하점면 장정리(長井里) 하음산(河陰山) 기슭 연못가에 상서로운 광채가 비치더니 이어 석함(石函)이 떠 올랐다. 마침 물을 길러 왔던 한 노파가 이상히 여겨 살펴보니 그 속에 용모가 뛰어난 아기가 들어 있었는데 왕(王)에게 바쳤더니 기이(奇異)하게 여기고 궁중(宮中)에서 양육하라는 명(命)을 내렸다.그리고 노파가 봉헌(奉獻)했다 하여 성(姓)을 봉(奉)이라 하고 이름은 우(佑)로 하사(下賜)했다고 한다. 그후 봉우(奉佑)는 자라면서 재능이 뛰어나 인종조에 갑과(甲科)로 급제하고 정당문학(政堂文學:종2품재신)을 거쳐 하음백(河陰伯)에 봉해졌으므로,후손들이 그의 봉군지(封君地)인 하음(河陰)을 본관(本貫)으로 하게 되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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