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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鳳)

    문중

    봉(鳳)

  • 유래

    경주(慶州)는 경상북도 남동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기원전 57년 이 곳에 6촌(六村)이 연합하여 고대국가(古代國家)를 형성,국호(國號)를 서라벌(徐羅伐).사로(斯盧).사라(斯羅)로 하고,수도(首都)를 금성(錦城)이라 하였으나 수도명과 국명을 동일시하였다. 서기 65년(탈해왕9) 시림(始林)에서 김씨(金氏)의 시조가 탄생하여 국호(國號)를 계림(鷄林)으로 칭하기도 하였으나 별칭으로 사용하였으며, 307년(기림왕10)에 최초로 국호를 신라(新羅)로 하였고, 935년(태조 18) 신라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敬順王)이 손위(遜位)하자 처음으로 경주(慶州)라는 명칭이 생겼다.1030년(현종 21) 삼경(三京) 제도가 실시되자 동경(東京)을 설치하고 충렬왕때 계림부(鷄林府)로 개칭하였다. 1413년(태종 13) 계림부를 경주부(慶州府)로 개칭하고,변천을 거쳐 1895년 경주군,1955년에는 경주시로 승격되었다.봉씨(鳳氏)는 중국 평양(平陽:절강성 임분현의 당나라 때 지명)에서 계출(系出)된 성씨(姓氏)로 명나라 신종(神宗:1573∼1619) 때 유근득(劉瑾得)이란 사람이 봉씨(鳳氏)로 개성(改姓)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우리나라 봉씨(鳳氏)의 관향(貫鄕)은 경주봉씨(慶州鳳氏) 단본이며,상계(上系)는 소목(召穆:사당에 조상의 신주를 모시는 차례)이 전하지 않아 고증(考證)할 수 없다. 1930년 일제강점기때 국세조사 당시 전남 해남군 현산면 백포리(白浦里)와 부산에 각각 1가구씩 있었으며 인구는 27명으로 집계되었고,1985년조사때는 남한에 54명이었다.한편 전남 해남군 현산면 (縣山面)백포리에 살던 봉금복(鳳今卜)의 말에 의하면 1926년 전남 보성에서 이주했다고 하며, 원래는 봉(奉)씨였는데 민적법(民籍法)시행 때의 오기(誤記)로 봉씨(鳳氏)가 된것이라고 하였다. 그것이 사실이면 하음봉씨에서 분적한 본관인 셈이다.1960년 국세조사에서는 인구 27명으로 성별 순위는 258성 중 제230위였고, 경주봉씨는 1985년에는 52가구에 173명이었으며,2000년에는 100가구에 316명이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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