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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균관 대사성 부종인, 육지로 들어와 연천에 자리잡은 부유성, 해적떼 소탕한 용장부시웅,유림의 추앙받은 부도일우리나라 부씨(夫氏)는 제주부씨.강진부씨.의성부씨 3본관에 2000년 인구조사에서 총 9,447명이었다.(의성부씨는 2000년에는 6명이었으며,강진부씨는 1명)부씨(夫氏)는 [탐라개국설화]에 등장하는 유명한 부을나(夫乙那)로 부터 시작된다.문헌에 의하면 옛날 탐라(耽羅:제주)에는 사람과 만물이 없었는데 한라산 북쪽 모흥혈(毛興穴)에서 세사람과 신인(神人)이 용출하였는데 이들이 부을나(夫乙那).고을나(高乙那:고씨 도시조).양을나(良乙那:양씨 도시조)이다.이들 3신인(三神人)은 사냥을 하며 살았는데 어느날 동쪽의 벽랑국(碧浪國:오늘날의 남해 지역 섬이라고도 하며 일본이라고도 함)으로부터 상자 하나가 바다로 떠내려 와서 열어보자그 속에는 세명의 미인(美人)이 있었으며 미인들은 오곡(五穀)의 씨앗과 망아지 송아지 등 6축(六畜)을 가져왔는데 3신은 세사람의 미녀(美女)를 맞아 각각 아내로 삼고 삼신들은 각기 활을 쏘아 화살이 맞닿는 곳에 생활의 터전을 삼아 목축과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고 한다. 그 중 [부을나]가 제주부씨의 시조가 되었으며 본관을 제주로 하였다.그로부터 문호가 열리게 된 부씨(夫氏)는 탐라국 삼도(三徒)를 지배하였으며 왕자(王子)였던 부계량(夫繼良)이 신라 무열왕 때 안무사(按撫使백성을 잘 보살피어 나라의 시책에 따르게 하는 임시벼슬)로 신라를 예방하여 외교를 트고 신라 왕으로부터 작록을 받았으며 탐라를 지키기 위하여 싸웠던 부여계(夫麗季)는 탐라를 정복하기 위하여 침입 한 신라군과의 싸움에서 순절하였다.그러나 부씨(夫氏)는 선대(先代)를 병화 등으로 잃게 되어 조선 초에 진용부위(進勇副尉:무관 종7품)로 별장(別將:산성.포구 등의 수비를 맡던 종9품)을 지낸 부언경(夫彦景)을 1세조로 받들며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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