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하위메뉴 바로가기

세계 孝 중심지 향한 첫 발, 인성교육과 뿌리의식 - 孝 !World

성씨유래검색

  • 성씨

    빙(氷)

    문중

    빙(氷)

  • 유래

    우리나라 빙씨(氷氏)는 중국 명나라 출신인 빙여경(氷如鏡)이 1465년(명나라 헌종 성화 13) 문과(文科대과)에 급제하여 문연학사(文淵學士:문연각은 명나라때 설치한 내각으로 대학사들이 모여 천자에게 강독하는 기관이며 청나라때는 자금성내에 설치함)와 예부시랑(禮部侍郞:정4품차관)을 지내고,내각한림(內閣翰林:조선때는 내각의 봉교(정7품)이하 검열(정9품)을 한림이라 함)에 이르러 1467년(세조13) 왕명(王命)으로 8학사와 더불어 조선에 들어와 우리나라에 정착한것이 시초(始初)가 된다.경주빙씨족보(慶州 氷氏族譜)에 의하면 세조(世祖)가 그를 국빈(國賓)으로 예우하여 동부승지(同副承旨승정원의 정3품)와 이조참의(吏曹參議정3품차관보)의 벼슬을 내린 후 경주부원군(慶州府院君)에 봉했으므로 관향(貫鄕)을 경주(慶州)로 하게 되었다고 한다.경주(慶州)를 단본(單本)으로 하는 빙씨는 그후 시조 빙여경의 아들 빙청(氷淸)이 1507년(중종2) 별시문과(別試文科:나라에 경사가 있을때나 병년(丙年)마다 보던 과거)에 급제하여 정언(正言:정6품)을 거쳐 강동부사(江東府使:정3품수령)로 나갔다가 선정(善政)을 베풀고 내직(內職)으로 들어와 좌승지(左承旨:정3품)를 거쳐 이조참판(吏曹參判:종2품차관)을 지냈으며,그의 맏아들 빙규현(氷奎鉉)이 중종때 무과(武科:무관을 뽑던 과거로 시험은 무예와 병서)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선전관청의 9품에서 3품)과 중화부사(中和府使정3품수령)를 거쳐 황해도수사(黃海道水使:3품 수군절도사)를 지냈고, 차남 빙규서는 지례현감(知禮縣監:종6품수령)을 역임하여 가세(家勢)를 일으켰다.조선 선조때 과거에 급제한 빙성의(氷珹儀:시조 여경의 현손)는 교리(校理:홍문관.집현전.교서관 등에서 문한의 일을 맡아보던 문관 정5품이나 종5품)와 문천군수(文川郡守:종4품수령)를 지내고 좌승지(左承旨승정원의 정3품)에 올라 가문(家門)의 전통을 이었으며, 그의 아들로 선조때 덕원부사(德源府使:정3품수령)를 지낸 빙홍일(氷弘日)과 삼척부사(三陟府使:정3품수령)겸 영장(榮將:고려때 각 진(眞)에 둔 으뜸벼슬)으로 무명(武名)을 떨쳤던 빙황일(氷璜一)이 유명했다.광해군(光海君)때 문과(文科:대과)에 급제한 빙신민(氷信敏:부사 빙황일의 아들)은 응교(應校:홍문관.예문관의 정4품으로 홍문관의 한 분장(分掌)인 공방(工房)을 관장하며 지제교도 겸함)를 시작으로 벼슬에 나가 안주목사(安州牧使:정3품수령)로 치적(治績)을 올렸으며,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왕명을 출납하던 중추부의 정3품당상관)를 역임한 빙한익(氷漢益)과 빙예봉(氷禮鳳) 부자(父子)가 이름났다.그외 삼척영장(三陟營將:삼척의 으뜸벼슬)을 지낸 빙주서(氷珠瑞:두익의 아들)와 용양위부호군(龍 衛副護軍:용양위는 중앙군사조직의 근간인 5위의 하나이며 부호군은 종4품)에 올랐던 빙여옥(氷麗玉)이 유명했고,호조참판(戶曹參判종2품차관) 빙상택(氷祥澤)은 동부승지(同副承旨:승정원의 정3품) 빙종문(氷種汶),예조좌랑(禮曹佐郞:정6품) 빙종찬(氷鍾찬),돈령부도정(敦寧府都正:정3품당상관) 빙종박.빙병순(氷炳淳)등과 함께 경주빙씨의 전통(傳統)을 이었다. 시조 빙여경의 묘는 개풍군 덕북면 우산남록에 있다고 한다.인구조사에 의하면 경주빙씨는 1985년에는 총 112가구에 451명이었고2000년에는 총 221가구에 723명이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목록
만족도조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

자료관리 담당부서 : 효문화마을관리원 > 뿌리공원과 > 뿌리공원담당 연락처 : 042-581-4445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