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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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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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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양서씨(南陽徐氏)는 서간을 시조로 받들고 있다.시조 서간은 중국에서 귀화한 8학사의 한 사람으로 당성(唐城,남양의 옛 지명)에 정착하여 살면서 벼슬이 태사(太師:정1품)에 이르러 남양군(南陽君)에 봉해졌다.그의 후손 서후(徐厚)가 고려 현종 때 대장군(大將軍:종3품)으로 거란의 침입을 격퇴하는데 공을 세워 당성군(唐城君)에 봉해졌다고 한다. 후손들은 서간을 시조로 받들고 관향은 조상의 봉군지인 남양(南陽)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잇고 있다.남양(南陽)은 경기도 수원과 화성시 일원을 포함한 지역의 옛 지명으로, 고구려 때의 당성군(唐城郡)을 신라 경덕왕이 당은군(唐恩郡)으로 개칭하였다.조선말기에 남양군(南陽郡)이 되어 인천부(仁川府) 관할이 되었다가, 1913년 군을 폐하고 그 땅을 나누어 영흥면 대부면은 부평군(富平郡)에 편입시키고, 나머지는 모두 수원군(水原郡)에 통합하였다.그후 수원면이 수원읍(水原邑)으로 승격되었으며 수원읍 이외의 땅은 화성군(華城郡)으로 수원읍은 수원시로 승격되었다.남양서씨는 조선시대에 문과(文科:문관을 뽑아쓰던 과거로 시험은 3년마다 실시되었으며 초시.복시.전시의 3단계로 나뉘었음.대과)에 2명 무과(武科:무관을 뽑던 과거로 시험은 무예와 병서로 3년마다 실시되었으며 초시.복시.전시의 3단계였음)에 2명 사마시(司馬試:생원.진사를 뽑던 과거)에 6명 등 모두 10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하였다.인구조사에서 남양서씨는 1985년에는 총 2,944가구에 13,650명이었으며,2000년에는 총 723가구에 2,246명이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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