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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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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성서씨(長城徐氏)는 서능(徐稜)을 시조로 받든다.문헌에 의하면 장성서씨(長城徐氏)의 시조 서능(徐稜)은 아간공(阿干公) 서신일(徐神逸:이천서씨시조)의 10세손으로 고려 고종(高宗:23대왕,재위:1213~1259)때 시중(侍中:백관을 통솔하고 서정을 총리한 종1품 정승)을 지내고 나라에 공을 세워 장성군(長城君)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서능(徐稜)을 1세조로 받들고 이천서씨(利川徐氏)에서 분적하여 식읍(食邑:고을의 조세를 개인이 받아씀)으로 하사 받은 장성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그러나 장성을 제외한 지역에 살고 있던 후손들이 같은 뿌리이면서도 이천서씨 절효공파(節孝公派)로 수보(修譜)를 해 옴에 따라 계보 정리에 혼선이 발생하여 1973년 양파의 합의에 의하여 이천서씨 절효공파대동합보(節孝公派大同合譜)를 편찬하였다. (이 책의 서씨 본문 이천서씨 참조) 가통을 이어온 대표적인 인맥으로는 1세조 서능의 아들 서준(徐俊)이 고려조에서 대장군(大將軍:종3품)을 역임했고 손자 서민경(徐敏敬)은 검교상장군(檢校上將軍:검교는 벼슬앞에 붙인 명예직이며 상장군은 정3품)이 되어 부자(父子)가 함께 무명(武名)을 떨쳤다.고려말에 진안감무(鎭安監務:작은 현에 중앙에서 파견한 감독관)를 역임했던 후손 서식(徐湜)은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상을 당했을 때 6년동안 시묘(侍墓:보모의 거상 중에 무덤옆에 막을 짓고 3년을 지내던 일)하여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으며 서굉(徐肱)은 조선초기에 승정원 좌승지(承政院左承旨:정3품)를 역임하여 병조참판(兵曹參判:종2품국방차관)을 지낸 서숭로(徐崇老)와 공조참의(工曹參議:정3품차관보)를 지낸 서봉록(徐奉祿),도호부사(都護府使:도호부의 으뜸 벼슬)에 오른 서일명(徐一明), 군자감정(軍資監正:군수품의 출납을 맡아본 관아로 정은 3품)을 지낸 서의건(徐義健) 등과 함께 명성을 떨쳤다.고려말 절신(節臣)으로 유명했던 서중보(徐仲輔)는 뛰어난 학행과 인품으로 명망이 두터웠으며 고려가 망하자 조의생(曺義生)등 71현(賢)과 함께 두문동(杜門洞:개성 광덕산의 마을)에 들어가 절의(節義)를 지켰다.서기1588년(선조 21)에 무과(武科)에 급제한 서응두(徐應斗)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義兵將) 김천일의 막하로 들어가 진주성 싸움에서 성이 함락되자 김천일.최경회 등과 함께 남강에 투신하여 호조참판(戶曹參判:종2품차관)에 추증되었다.이밖에 비서원승(秘書院丞1895년(고종32)에 비서감을 고친이름이며 고려때는 종5품)서인식(徐寅植)과 돈령부도정(敦寧府都正:조선 시대 종친부(宗親府)에 들어가지 못하는 임금의 친척과 외척(外戚)을 위한 예우기관이며 도정은 종3품)에 오른 서규연(徐奎衍)이 유명했고,서행근(徐行根)은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왕명으로 죄인을 추국하던 의금부의 5품)를 역임하여 도호부사(都護府使:도호부는 고려.조선때 지방 행정기관의 한가지)를 지낸 서확과 함께 장성서씨를 크게 빛냈다.장성서씨는 조선시대에 무과(武科:무관을 뽑던 과거로 시험은 무예와 병서로 3년마다 실시되었으며 초시.복시.전시의 3단계였음)에 6명,사마시(司馬試:생원.진사를 뽑던 과거)에 11명 역과(譯科:중국어.몽고어.일본어.여진어에 능통한 사람을 역관으로 뽑아 쓰기 위하여 보이던 과거)에 2명 등 19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했다.인구조사에 의하면 장성서씨는 1985년에는 1,472가구에 6,382명이었고2000년에는 1,540가구 4,832명이었다.평당서씨(平當徐氏,봉성)평당서씨(平當徐氏)는 이천서씨(利川徐氏) 시조 서신일(徐神逸)의 후손 서준방(徐俊邦)이다. 시조 서준방은 고려때 형부상서(刑部尙書:정3품 법무장관)로 있으면서 고려조에 공을 세워 봉성(峯城君:파주,평당의 옛 지명)에 봉해졌으며 그의 아들 서약진(徐若珍)과 손자 서숭조(徐崇祖)에 이르기까지 3대가 봉성군(峯城君)에 봉해짐으로써 후손들이 평당(平當)을 본관으로 하였다.그러나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동국만성보(東國萬姓譜)에 따르면 시조 서준방(徐俊邦)은 서신일의 5세손으로 이천서씨에서 분적(分籍)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같은 뿌리로 알려진 봉성서씨(峰城徐氏)는 문과(文科:대과)에 급제하고 벼슬을 역임한 서극후(徐克後)의 후손으로 전하고 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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