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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주석씨(海州石氏) 시조는 조선 선조때 종계변무(宗系辨誣:조선초부터 선조까지 약 200년간 명나라에 잘못 기록된 태조 이성계의 종계(종친의 계보)를 고쳐줄것을 요구한 사건이다.이성계가 명나라의 태조실록에 고려의 권신 이인임의 아들로 기록되어 있는것을 처음 알게 된것은 1394년이었다.여러차례 사신을 보내 고쳐줄것을 요구했으나 실현되지 못하다가 1584년(선조17)종계변무 주청사 황정욱 등이 명에 가서 정정키로 확정을 봄)와 임진왜란때 명나라 군사의 파병에 공이 큰 명나라 병부상서(兵部尙書:정3품국방장관)석성(石星)이다.시조 석성은 중국의 동명사람으로 1559년 진사(進士)이과에 급제하고 명나라 명종에게 직간하다가 파직되었으나 다시 등용되어 병부상서(兵部尙書:정3품 국방장관)에 올랐다.명나라의 신종(神宗)은 막대한 군비조달 등으로 국운이 쇠하자 석성(石星)에게 책임을 물어 투옥하여 옥사시켰다.석성(石星)의 유언에 따라 부인 류씨(柳氏)와 두아들 석담(石潭).석천이 조선으로 왔는데,석담(石潭)은 어머니와 함께 해주에 정착하여 수양군(首陽君)에 봉해져 해주로 본관을 정하였고, 석천은 성주(星州)에 정착하여 성주로 본관을 정하였다.석담의 후손 석중립(石仲立)은 숙종때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왕명을 출납하던 중추부의 종2품),석진번(石進繁)은 형조참의(刑曹參議:정3품법무차관보),석관기(石冠琦)는 군기감정(軍器監正:군에서 필요한 기구와 병기,융장 등을 만들고 관리하던 관청의 정3품), 석유채(石有彩)는 공조참판(工曹參判:종2품차관)을 지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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