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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씨

    석(昔)

    문중

  • 유래

    우리나라 석씨(昔氏)는 월성,경주,함평,홍주 등 4본관에 인구는 경주석씨가 2,433가구에 7,996명,홍주석씨는 1명,함평석씨는 4명으로 2000년 조사에서 총 9,544명이었다.석씨(昔氏)의 시조는 신라 제4대왕 탈해이사금(재위:57~80년)이다.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에는 탈해왕(脫解王)의 탄생에 대한 신화가 다음과 같이 전해진다. 왜국(倭國)의 동북쪽 천리에 있는(중국 흑룡강성 하구로 고증됨) 다파나국(多婆那國:일명 용성국 龍城國)의 왕이 여왕국(女王國)의 딸을 왕비로 맞이했는데 오래도록 아들이 없어 기도하여 아들을 구했더니 7년만에 큰 알을 낳았다.왕이 말하기를 "사람이 알을 낳는 것은 상서롭지 못하니 버림이 좋겠다"고 하여,비단으로 알을 싸고 보물과 함께 궤속에 넣어서 바다에 띄워 두었다. 궤짝을 실은 배는 처음에 금관국(金官國)해변에 이르렀으나 사람들이 보고 괴이하게 여겨서 거두지 않자 배는 계림(鷄林)의 동쪽 하서지촌(下西知村) 아진포(阿珍浦: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아진포 포구)에 닿았는데 이때가 기원전19년(신라 박혁거세 39년)이었다.바닷가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아진의선(阿珍義先)이라는 노파가 이를 보고 새끼줄로 배를 매어 해안으로 끌어 올린 후 궤를 열어보니 용모가 단정한 사내아이가 있어, 데려다 길렀는데 키가 9자나 되고 풍모가 준수하여 지혜가 뛰어났다.그러나 아이의 성씨(姓氏)를 알지 못하여, 처음 배가 올때 까치가 울면서 따라 왔으므로, 까치작(鵲)자에서 새조(鳥)를 떼어 버리고,석(昔)을 성(姓)으로 삼고,포장된 궤속에서 나왔다고 하여 탈해(脫解)라는 이름을 지었다.제3대 유리왕이 33년간의 재위 끝에 죽자, 남해왕의 유언과 유리왕의 뜻에 따라 서기 57년 신라 제4대 왕으로 석탈해가 왕좌에 등극하니 이는 바로 경주석씨의 시조이다.그로부터 석씨(昔氏)는 신라 56대왕 중 4대 탈해왕을 비롯하여 8.9대 벌휴왕(伐休王),10대 내해왕(奈解王),11대 조분왕(助賁王),12대 첨해왕(沾解王),14대 유례왕(儒禮王),15대 기림왕 (基臨王), 16대 흘해왕(訖解王)까지 8왕에 걸쳐 173년간 왕통(王統)을 이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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