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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씨(白氏) 대부분 수원백씨와 근원 같아시조의 묘 실전(失傳)되었으나 1965년에 찾아백이정,백인걸,백문보,백낙준,백남준,백선엽우리나라 백씨(白氏)는수원백씨.안동백씨.충주.경기.경주.광주.김해.나주.남원.남포.남해.대구.대흥.문경.밀양.배천.부여.성산.성주.순천.순흥.연안.원주.임천.적성백씨 등 34본관에 2000년에는 총 351,275명이었다.백씨(白氏)의 시조는 백우경(白宇經)으로 호(號)는 송계(松溪)이며 시호(諡號)는 문경(文景)이다.(편집자 주:백씨시조와 연원에 대해서 남포백씨 등은 수원백씨와 근원이 다르다고 한다)현재까지는 우리나라 백씨(白氏) 대부분은 <수원백씨>에서 분적하였다는 것이 통설이다.문헌에 의하면 백씨(白氏) 시조 백우경(白宇經)은 당나라때 소주(蘇州)사람으로 벼슬이 이부상서(吏部尙書:고려에서는 정3품 장관이었으며 어사(御事)를 고친 명칭으로 후에 판서.전서로 바뀌었음),좌복야(左僕射:정2품부총리),사공(司空:고려때 태위(太尉).사도(司徒)와 함께 삼공(三公) 중의 하나로 정1품의 최고 관직이며 실무에 종사하지 않는 대우직이자 명예직이었고,이에 적합한 인물이 없으면 비워 둠)에 이르렀다.그러나 간신들의 모함으로 서기 780년(경신년:신라 선덕왕 1년,당나라 덕종 1년) 당나라를 떠나 신라로 건너와 경주 계림(鷄林)의 자옥산(紫玉山:월성군 안강읍 옥산동)아래에 정착하면서 우리나라 백씨(白氏)의 뿌리를 이루었다고 한다.백우경이 신라 조정에서 누린 관작을 보면 조선시대 세종 때의 명신 황희가 지은 영락보(永樂譜)서문에 위지대상(位至大相)이라 명기하고 있으며,기해대동보(己亥大同譜)에도 "신라의 벼슬이 좌복야(左僕射:상서도성의 정2품부총리).사공(司空:고려때는 삼공의 하나로 정1품).대사도(大司徒:주나라의 사도벼슬로 조선시대에는 호조판서로 정2품)에 이르렀다"고 기록하고 있다.문헌에 보면 백유경이 자옥산 아래에 영월당(迎月堂).만세암(萬歲庵)을 짓고 거처로 삼아 살고있는데 어느날 선덕왕이 백유경의 거소에 직접 찾아와 암자 이름을 정혜사(淨惠寺)라 고쳐 짓고, 스스로 붓을 들어 영월당(迎月堂) 현판에 경춘(景春)을 썼으며,또한 선덕왕은 사운시(四韻詩)를 직접 지어 액자에 새겨 걸었다고 한다.당나라 황제가 누차에 걸쳐 본국으로 불렀으나 백유경은 끝내 응하지 않았는데 이미 신라 국정에 깊이 관여하였을 뿐 아니라 제자들을 양성하는데 전념하였기 때문이라는 기록이 전한다.백유경은 말년에 후진양성에 전념하다 73세로 사망했다.송계공의 묘는 실전(失傳)된 것으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공의 음덕과 후손들의 열(熱)과 성(誠)으로 1965년에 공의 묘를 찾아내는데 성공했다.후손들은 그 묘역(墓域)을 중수(重修)하고 제단비(祭壇碑)를 세웠다. 1975년에는 화수회(花樹會) 중앙총본부가 주관하여 시조의 재실(齋室) 건립에 착수, 완공하고 영월당(迎月堂)이라 이름하고 해마다 양력 5월 첫째 일요일을 시조 송계공의 제일(祭日)로 정하고 전국의 백씨 일가들이 모여 제사를 지내며 시조 송계공의 유덕(遺德)을 추모하고 있다.백씨는 중시조 백창직(白昌稷:자는 화숙(和淑)이고 시호는+ 영희 英禧)을 1세(世)로 하여 계세(系世)하고 있다.그는 신라말엽 경명왕(서기 917~922)때 벼슬이 중랑장(中郞將:정5품 무관)에 이르렀으며,시중(侍中:종1품 정승),상장군(上將軍:정3품)에 증직(贈職)되었다. 묘는 예천에 있었다고 하나 실전하고 신위는 시조 송계공 재사 영월당과 충남 보령시 웅천면 평리 동막동 옥산사에 모시고 있다.배(配) 상화공주는 경명왕 박승영의 딸로 소생은 없다.배(配) 진천임씨는 삼중대광(정1품품계)으로 일흥군에 봉해진 임희의 딸로 고려 2대왕 혜종비(惠宗妃)임씨(林氏)와 자매간이다.백씨의 본관은 수원(水原) 단본이다. 문헌에는 수원백씨 외에 남포(藍浦),직산(稷山),임천(林川),태천(泰川),적성(赤城:순창 淳昌),문경(聞慶),청도(淸道),해미(海美),남해(南海),해안(海岸:대구),개성(開城),선산(善山),대흥(大興),부여(扶餘),태인(泰仁)등 10여 본이 전해지고 있으나,모두 한 핏줄이라고 하며 <갑자대동보(甲子大同譜)>를 발간할 때 각 파(派)의 대표들이 모여 수원으로 단일화하기로 합의한 후 대부분 수원을 본관으로 쓰고 있다.그러나 아직도 보령의 이재공<이정>파 후손들은 남포로 쓰고 있고, 대흥, 청도, 부여, 임천, 태인 등으로 칭관하는 파도 있으나 그 수 는 많지 않다.백씨(白氏)는 고려.조선조를 통해 많은 석학과 명유를 배출한 기호지방과 관서지방의 문벌가다.문간공(文簡公) 백문절(白文節)은 고려 고종때 문과(文科:대과)에 급제 국자좨주(제주,3품)를 지냈다.1269년 복위한 원종이 원나라에 들어갈 때 폐위 사실을 감추려고 그에게 전왕이 병으로 물러났다는 표(表:품은 말을 황제에게 올리는것)를 쓰라고 했으나 눈물로 간하여 사실대로 원나라 황제에게 알리게 하였다.충렬왕때 국학(國學:고려 시대에 관리 임용을 위한 교육을 실시했던 교육훈련기관),대사성(大司成:성균관의정3품),보문각학사(寶文閣學士:고려때 경연(經筵)과 장서(藏書)를 맡아보던 관청으로 중추원의 내신이 겸직하였고 후에 대학사(대제학)1인을 둠)를 지냈다.그의 아들 백이정은 안향(安珦)의 문인으로 충선왕을 호종(扈從:왕가를 뒤따름)하여 원나라에 가서 10여년간 있으면서 주자학을 연구하고 돌아와 이제현(李齊賢).박충좌(朴忠佐)에게 전수, 우리나라 성리학의 발전에 큰 공을 세웠다.백이정(白 正,1247(고종 34)∼1323 충숙왕 10,남포백씨)의 자는 약헌(若軒). 호는 이재(彛齋). 보문각학사(寶文閣學士).시호는 문헌(文憲)이다.1275년(충렬왕1) 문과(文科:대과)에 급제, 충선왕때 첨의평리(僉議評理:종2품재신급)로 상의회의도감사(商議會議都監事)를 겸하였고 뒤에 상당군(上黨君)에 봉해졌다.1298년 원나라가 사신을 보내 세자를 왕으로 삼고, 8월에 왕을 불러가자 충선왕을 따라 원의 연경에서 10년간 머물러 있었는데, 그동안 주로 성리학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 연구하였고, 귀국할 때 정주(程朱)의 성리서적과 주자의 가례(家禮)를 가지고 돌아왔다. 그뒤 후진양성에 힘써서, 이제현(李齊賢).박충좌(朴忠佐).이곡(李穀).이인복(李仁復).백문보(白文寶)등 많은 문인을 배출하였으며, 도학과 예학을 발전시키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성리학을 들여온 사람은 안향이지만, 성리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그 체계를 파악하여 크게 일가를 이룬 이는 백이정이라 할 수 있다.안향과 백이정의 학통은 이제현에게 전승되었고,이제현은 이색(李穡)에게, 이색은 권근(權近)과 변계량(卞季良)으로 이어졌다.선조때 김제남(金悌男).최기남(崔起南) 등이 송경(宋京)에 서원을 세워 안향.권보(權溥)와 함께 배향하기로 경기사림(京畿士林)과 논의하다가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이루지 못하였지만, 남포의 신안원(新安院), 충주의 도통사(道統祠), 진주의 도통사(道通祠), 남해의 난곡사(蘭谷祠)에서 향사하고 있다.묘소는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면 평리 양각산(羊角山)에 있으며, 신도비 등이 남아 있다. 유고로는 연거시(燕居詩).영당요(詠唐堯).한벽루(寒碧樓).여홍애집구(與洪厓集句)등의 시구가 전해지고 있다.충간공(忠簡公) 백문보(白文寶)는 공민왕때 왕자사부(王子師傅왕자를 가르치던 임시관직),정당문학(政堂文學중서문하성의 종2품 재신) 등을 지내고 직산부원군에 봉해졌다.백씨(白氏)는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80명,공신 2명, 장신 2명, 청백리 1명을 배출했다.문과 급제자를 본관별로 구분하면 수원 65명,선산 3명, 대흥과 남포에서 각 2명,직산.해미.개성 홍성에서 각 1명, 본관 미상이 4명이다.백씨 성의 뿌리에 대해서는 만성통보(萬姓統譜)에[皇帝之後 此乃中華白性之源也 始祖松鷄公卽中華蘇州人而居東方]즉 황제(皇帝)의 후손이 중국 백씨성의 근원이며, 시조 송계공은 곧 중국 소주 사람이 동방(신라)에 건너와 산 것이라는 뜻이다.이 기록에 의하면 백씨의 조상은 역사적으로 올라가면 황제(黃帝) 헌원(軒轅)이라는 뜻이다.황제(黃帝) 헌원(軒轅)은 여러 기록에 등장하는 전설 상의 제왕(帝王)으로 성은 공손(公孫)이며, 이름은 헌원(軒轅)이다. 삼황오제(삼황:신농씨,복희씨,황제)중의 한 사람으로 헌원은 도교의 시조로 추앙받고 있으며,죽어서 신이 되었다고 한다.[수원백씨] 관향인 수원은 현재의 경기도 수원시 일원이며 지난 2000년 인구조사에서 총 98,748가구에 인구는 316,535명이었다.[남포백씨] 관향인 남포는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일원의 옛 지명으로 2000년 인구조사에서 총 1,816가구에 6,052명이었고,[경기백씨]는 2000년 인구조사에서 총 1,530가구에 4,726명이었다.[경주백씨]는 2000년 인구조사에서 총 1,020가구에 3,131명이었으며,[광주백씨]의 관향은 현재의 경기도 광주 일원으로,2000년 조사에서 344가구 1,036명이었으며,[김해백씨]는 총 345가구에 1,131명,[나주백씨]는 총 506가구에 1,536명이었다.[대흥백씨] 관향은 예산군에 속한 지명으로 2000년조사에서 399가구에 1,280명이었으며,[문경백씨]는 총 394가구에 1,909명이었고,[배천백씨]의 관향은 현재의 황해도 연백군 일원으로 2000년조사에서 524가구 1,625명이었다.수원백씨(水原白氏)는 조선시대에 문과(文科:문관을 뽑아쓰던 과거로 시험은 3년마다 실시되었으며 초시.복시.전시의 3단계로 나뉜 대과)에 63명,무과(武科:무관을 뽑던 과거로 시험은 무예와 병서로 3년마다 실시되었으며 초시.복시.전시의 3단계였음)에 23명,사마시(司馬試:생원.진사를 뽑던 과거)에 107명,의과에 1명 등 194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하였다.백씨(白氏)는 선정공파,인주공파,오산군파,장단공파,담암공파,양곡공파,태사공파,정신재공파,좌랑공파,훈정공파,도승지공파,참봉공파,별좌공파,문경공파,청산공파,산음공파,임피공파,중랑장공파,봉익대부공파,보공장군공파,부사공파,금릉부원군공파,함팡공파,절제공파,수의부위공파,시랑공파,동림공파,부여군파,문간공파 등이 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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