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하위메뉴 바로가기

세계 孝 중심지 향한 첫 발, 인성교육과 뿌리의식 - 孝 !World

성씨유래검색

  • 성씨

    구(具)

    문중

    구(具)

  • 유래

    시조는 신안주씨 시조 주 잠의 사위세조때의 영의정 구치관 등 2명의 정승 배출 과거에 194명 급제능성구씨(綾城具氏)는 고려말에 검교상장군(檢校上將軍:중앙군의 정3품,검교는 명예직)을 지내고 벽상삼한삼중대광 (壁上三韓三重大匡:문산계의 종1품은 중대광(重大匡)이고 삼중대광은 정1품이며 후에 벽상삼한의 칭호붙임)에 오른 구존유(具存裕)를 시조로 받든다.문헌에 따르면 시조 구존유(具存裕)는 신안주씨(新安朱氏)의 시조 주잠(朱潛)의 사위라고 한다.구존유의 장인인 주잠(朱潛)은 송나라의 한림학사(翰林學士:뛰어난 문신이며 한림원의 종2 에서 4품이고 임금의 조서를 짓는일을 맡아봄)로 있을 때,송나라가 원나라에 패망하자 서기1224년(고려 고종11)에 엽공제,주세현,진조순,유응규,주행수,조창,도성하 등 7학사(學士)와 함께 우리나라에 망명하여 전남 나주의 옛이름인 금성에 정착하였다.당시 몽고는 중원대륙을 평정 할 정도의 막강한 나라였으며 국호를 원나라로 개칭하고 세력을 확장 해 나갈 때다.한림학사(翰林學士) 였던 주잠(朱潛)은 이름을 구적덕(具積德)으로 개명하고,능주의 노정리에서 은거하다가,"삼별초의 난"으로 인해 다시 용담으로 이주 하였으나,"삼별초 난"이 정리된 후 다시 능주로 이주 하면서 2남1녀를 두었다.송나라 도학자(道學者)인 회암(晦庵) 주 희(朱熹)의 4세손인 주잠(朱潛)의 딸과 결혼한 구존유는 능성(綾城 :능주.화순현)으로 이주하여 주씨부인(朱氏夫人)과 같은 생활터전을 두게 되자 구존유는 지명(地名)을 따라 관향을 능성구씨로 하게 되었다.시조 묘는 전남 화순 한천면의 정리에 있었으나,실전(失傳:대대로 내려오던 묘지를 알수없게 됨)되었다고 한다. 고려후기에 문호(門戶)를 연 능성구씨(綾城具氏)는 조선 영조대에 이르기까지 무맥(武脈)을 이어오면서 권력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능성구씨는 시조의 6대손 때인 고려 말 조선시대 초기에 판사파(判事派:현좌 賢佐).시랑중파(侍郞中派:구영양 英良).좌정승파(左政丞派:구홍鴻).판안동파(判安東派:성량成亮).도원수파(都元帥派:성로成老).낭장파(郞將派:현보賢補).감무파(監務派:현기賢器).참판파(參判派:성미成美).문천군사파(文川郡事派:원립爰立)등 원래 11파(派)였으나, 9파가 현존하고 2파는 무후이다.파별(各派別) 분포사항은 다음과 같다.구현좌(具賢佐)는 판사파(判事派)로 서산과 해미등지에 세거구현로(具賢老)는 전서파(典書派)로 무후(無后:자손이 없음)구영량(具英良)은 시랑중파(侍郞中派)로 화순과 보은 등지에 세거구 홍(具 鴻)은 좌정승파(左政丞派)로 성주(星州)와 대구.안동 등지에 세거구성량(具成亮)은 판안동파(判安東派)로 당진(唐津) 및 강화(江華) 등지에 세거구성로(具成老)는 도원수파(都元帥派)로 광주(廣州)와 여주(驪州) 등에 세거구현보(具賢輔)는 낭장파(郞將派)로 서천(舒川) 및 비인(庇仁) 등에 세거구현기(具賢器)는 감무파(監務派)로 당진(唐津)과 면천(沔川) 등이 세거구성미(具成美)는 참판파(參判派)로 익산(益山) 등에 세거구원립(具爰立)은 문천군사파(文川郡事派)로 전북 완주(完州)와 고산(高山) 등지에 세거이중 도원수파.판안동파.좌정승파 등 3파(派)가 조선시대에 가장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으며, 자손이 크게 번창하여 이들 3파가 오늘날 구씨 전체인구의 약 80%를 차지하고 있다.능성구씨 각 파(派)의 대표적인 인물을 보면 판사파(判事派)의 파조인 구현좌(具賢佐)가 고려에서 사재감 판사를 지냈으며,그의 아들 구인문은 세종 때 과거에 급제하고, 집현전 교리를 지내면서 문종의 총애를 받았으나,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자 눈뜬 소경으로 행세하며 낙향하여 두문불출 하고, 후에 이조판서(吏曹判書:정2품 장관)에 추증되었다.구영랑은 시랑(侍郞:4품차관)을 역임했고, 구희는 학자로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아 진양강에서 왜군과 싸우다가 전사했다.좌정승파(左政丞派)의 파조인 구홍은 고려의 충신으로 우왕 때 밀직부사(密直副事:정령을 출납하던 밀직사의 정3품)를 거쳐 우정승(右政丞:종1품 정승)에 올랐으나 고려가 망하자 두문동에 들어가 절의를 지켰다.한편 구익수는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을 미리 알고 거짓으로 미친체하며 벼슬을 버리고 은거 하였는데, 세조가 즉위한 후 공조참판(參判:종2품 차관)에 임명했으나 끝까지 불취했고, 구봉령은 명종 때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선조 때 부제학(副提學:홍문관의 정3품 당상관)과 대사헌(大司憲백관을 규찰하던 사헌부의 종2품검찰총장)을 지냈으며, 당시 격렬한 동서 당쟁 속에서 중립을 지켰다고 한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목록
만족도조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

자료관리 담당부서 : 효문화마을관리원 > 뿌리공원과 > 뿌리공원담당 연락처 : 042-288-8312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