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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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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산승씨는 연일승씨의 시조 승개(承愷)를 받드는 같은 뿌리로, 후손이 광산에 세거하게 되어 본관을 광산으로 하였다.광산승씨는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조선 성종의 명으로 노사신.양성지.강희맹 등이 편찬한 우리나라 지리서로 각 도의 지리.풍속과 그 밖의 사항을 기록함)에도 광주의 토성(土姓)으로 기록되어 있다.<광산승씨족보>에 의하면 시조 승개(承愷)의 아들 승성구와 손자 승명복(承命福)이 영의정(領議政:정1품 정승)을 지냈다고 하며, 8세손 승교(承敎)는 서기1427년(세종 9) 진사시에 합격한 후 정언(正言:왕에게 간하던 일을 맡아하던 사간원의 정6품)을 거쳐 봉렬대부(奉列大夫:조선때 정4품 하(下)의 종친(宗親)과 동반(東班) 문관 관계로 봉정대부(奉正大夫) 다음 가는 관계이며,서반(西班)의 소위장군(昭威將軍)과 같은 위계임)로 남평현감(縣監:종6품 수령)을 역임하여,주부(主簿:조선때 내의원.한성부 등 여러관아에 딸린 종6품 낭관)를 지낸, 승봉선(承奉先)과 승명수와 함께 가세를 일으켰고, 승설(承渫)은 광해군때 선무랑(宣務郞:종6품 문관 하(下)의 품계)으로 예빈시주부(禮賓寺主簿:빈객의 연향과 종재(宗宰)의 공궤를 맡아보던 관아의 종6품 낭관)를 지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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