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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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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씨(施氏)는 임진왜란 때 원정군으로 조선에 들어와 전공을 세운 시문용(施文用)의 후예문헌에 의하면 절강시씨(浙江施氏)는 중국의 성씨로 춘추시대의 시백으로부터 성씨(姓氏)가 시작되었다고 하며, 중국의 명문집안으로 알려져 있다.한국 시씨(施氏) 1세조는 시문용(施文用, 호는 명초)으로, 그는 명나라 무장(武將)인데 서기1592년(조선 선조 26) 임진왜란때 원정군으로 조선에 들어와 전공을 세웠으며, 명나라 군사가 철수 할때 어깨의 부상으로 귀국하지 못하고, 성주에 정착하여 살게 되었다고 한다.기록에 의하면,후손들은 시문용(施文用)을 한국의 1세조로 받들고, 1세조의 고향인 절강(浙江)을 본관으로 하였다.전해지는 관향은 절강 단본이다. 그 후 시문용(施文用)은 창녕장씨를 부인으로 맞이하여, 아들 시영건(施永建)과 시영달(施永達) 형제를 낳아 절강 시씨의 양대산맥을 이루었다.광해군때 영의정(領議政:정1품정승)이었던 정인홍(鄭仁弘)의 추천으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使:왕명을 출납하던 중추부의 정3품)에 올랐으나,인조반정이 일어나 정인용이 실각되자,성주로 돌아와 학문연구에 전력했다.특히 시문용은 의학과 병법에 조예가 깊어, <병학기정>과 <의복결유>.<감여지남>등의 저서를 남겼으며, 문하에서 훌륭한 학자를 많이 배출하여 문명을 떨쳤는데, 시문용(施文用)은 무예뿐 아니라 문장(文章:문장가의 준말.생각이나 느낌을 줄거리를 세워 글자로써 적어 나타낸 것)에도 능했다고 한다.병자호란이 일어나 인조가 삼전도(三田度:송파구 송파동에 있던 한강상류의 나루터 잠실지역)에 수항단을 쌓고 청나라 태종에게 치욕적인 항복을 한 후, 청태종이 조선에 남아있는 명나라 유민들을 모두 체포하여 강제 송환을 시키려할 때,시문용은 성주군 용암면 문명동 군성산 기슭에 은거하며 청나라에 망한 명나라의 재기를 기원했다.영조때 유명한 암행어사 박문수(朴文秀)가 <임진왜란 참전용사> 후손들의 생활상을 조사하여 왕에게 보고하자, 영조 임금은 시문용을 병조참판(兵曹參判:종2품 국방차관)에 추증하고, 그 후손들에게 조세와 부역을 면하게 하라는 교지를 내렸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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