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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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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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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묘사화 때의 좌의정 심정청백리 심수경 75세와 81세에 아들 낳아 기록 세워풍산심씨(豊山沈氏)는 심만승(沈滿升)을 시조로 받든다.풍산심씨의 시조 심만승은 중국 오흥(吳興:절강성 북구와 태호 남쪽 기슭에 위치한 지명) 출신으로 천성이 총민하고 박학다능 했다고 한다. 그는 서기 1110년(고려 예종 5) 동료인 호종단(胡宗旦:복주인),유재(劉載),안신지(安愼之)등과 함께 상선(商船)을 타고 고려에 들어와 귀화하였다.고려에 들어온 그는 태백산 아래인 풍산현(豊山縣)에 정착하였고, 문장(文章)과 덕행(德行)이 뛰어났다고 하며, 고려 예종의 총애를 받아 청환직(淸宦職:학식이나 문벌이 높은 사람에게 시키던 규장각.홍문관.선전관청 등의 벼슬)에 발탁되어,상서봉어(尙書奉御:고려때 상의국의 정6품)및 태자첨사부첨사(太子詹事府詹事:고려 때 동궁과 첨사부에 딸렸던 정3품으로 1276년 세자첨사부로 바뀜)에 이르렀다.후손들은 풍산(豊山)에서 세거하면서, 심만승(沈滿升)을 시조로 받들고, 본관을 풍산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그후 시조 만승의 8세손 심승경(沈承慶)이 고려말에 전농시사(典農寺事:나라의 제사에 사용할 곡식을 맡아본 관아의 벼슬)와 상호군(上護軍:정3품 상장군이 바뀐 명칭)을 지냈으며, 고려말에 난정이 심해지자 이를 개탄하여 벼슬을 버리고 향리로 돌아와 시서(詩書)로 여생을 마쳤으며, 그의 아들 심귀령(沈龜齡)이 조선 초기에 크게 현달하여 가세를 일으켰다.풍산심씨는 조선시대에 문과(文科:대과.문관을 뽑아쓰기 위한 과거로 3년마다 실시되었으며 초시.복시.전시 3단계로 나뉘었음)에 15명, 무과(武科무관을 뽑기위한 과거로 시험은 무예와 병서로 초시.복시.전시의 3단계였음)에 1명, 사마시(司馬試:생원.진사를 뽑던 과거)에 40명 등 56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했다.풍산심씨는 인구조사에서 1985년에는 총 2,772가구에 12,024명 이었으며,2000년에는 총 3,397가구에 10,990명이었다.풍산(豊山)은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일대의 옛 지명으로,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영안(永安)으로 개칭되어 예천군의 관할이었으며 923년(고려 태조 6)에는 풍산(豊山)또는 풍악현(豊岳縣)이라 개칭하였고,1018년(현종9) 길주(吉州:안동)에 예속되었다가,1172년(명종2) 감무(監務:작은현에 중앙에서 파견한 감독관)가 파견되면서 독립하였다.1914년 군면 폐합으로 안동군 풍산현의 4개동 및 일부 7개동을 병합하여 풍산면으로 개칭하였다가,1973년 풍산면이 읍으로 승격하였고,1995년 안동시에 통합되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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