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하위메뉴 바로가기

세계 孝 중심지 향한 첫 발, 인성교육과 뿌리의식 - 孝 !World

성씨유래검색

  • 성씨

    심(沈)

    문중

    심(沈)

  • 유래

    시재에는 내가 따를 수 없다, 퇴계 이황이 극찬했던 심장원(沈長源)"불의한 것은 티끌만 한 것도 취하지 않는다"는 자계훈(自戒訓) 지켜삼척심씨(三陟沈氏)의 시조 심동노(沈東老)의 선조는 고려 숙종때 좌승선(左承宣:왕명의 출납과 궁중의 숙위.군기 등을 맡아봄 1276년 좌승지로 고침)과 군기소감(軍器少監:융장 따위를 맡아 관리하던 관청의 종4품이며 태종14년에 군기감을 고친 이름)을 지낸 심후와 문림랑(文林郞:고려 때 29품계 중 28품계인 종9품 상계 上階)과 군기주부(軍器主簿:병기만드는 일을 맡아본 관아의 벼슬)를 지낸 심적충이라고 한다.삼척심씨는 삼척에서 대대로 살았으나 기록이 없어져 후손인 심동노(沈東老)를 1세조로 받든다.삼척심씨(三陟沈氏)의 1세조 심동노(沈東老)는 초명이 한(漢)이었으며 고려 말엽에 중서사인(中書舍人:중서문하성의 정4품)과 예의판서(禮儀判書:예의사의 정3품장관) 집현전제학(集賢殿提學대제학 아래의 정3품)을 지냈다.다른 문헌에는 집현전학사(學士:집현전은 경연과 서연을 맡아보면서 학문을 연구하였음 학사는 문신가운데 뽑힌 뛰어난 학자로 종3품.정4품)를 지냈다고도함)등을 지내고 지제고(知制誥:왕의 교서를 지어 바치던 벼슬)를 겸임했다고 한다.1세조 심동노는 진주군(眞珠君진주는 삼척의 옛지명)에 봉해졌기에 후손들이 본관을 삼척(三陟)으로 하였다.1361년(공민왕 10)에 노령으로 벼슬에서 물러나자 왕이 죽서루(竹西樓)에 나와 칙명(勅命:임금의 명령)으로 동노(東老)라는 이름을 하사(下賜)하며 식읍(食邑그곳의 조세를 개인이 받아쓰게 하던 고을)을 내렸다고 한다. 시조 묘는 강원도 명주군 묵호읍 발한리에 있다.그후 심동노의 아들 심공무(沈公懋)가 문과(文科:대과)에 급제하고 봉선대부(奉善大夫)로 서운관 부정(書雲觀副正:고려.조선때 천문.역수.측후.각루 등의 일을 맡아보던 관청.부정은 종4품)을 지냈으며 손자 심원복(沈原福)은 현감(縣監:종6품수령)을 역임하여 가세를 일으켰다.한편 시조의 현손(玄孫손자의 손자.고손자)으로 조선 세조때 문과(文科:대과)에 급제한 심가보(沈家甫)는 양구와 흡곡현령(縣令:종5품 수령)을 지냈고 그의 아들 심희전(沈希佺)은 중종때 병조좌랑(兵曹佐郞:정6품 전랑)에 올랐으며 흡곡 현령(縣令종5품 수령)을 역임하고, 춘추관(春秋官:시정의 기록을 맡아보던 관아)의 기주관(記注官:정.종5품)을 거쳐, 지제교(知製敎:왕의 교서를 지어 바치던 벼슬)를 지내고 의정부 좌찬성(議政府左贊成:종1품 재신)에 추증된 심준(沈濬)과 함께 이름을 떨쳤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목록
만족도조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

자료관리 담당부서 : 효문화마을관리원 > 뿌리공원과 > 뿌리공원담당 연락처 : 042-581-4445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