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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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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대(代)가 청백리에 뽑혀 큰 명성자주적 객관적 실증적인 한국사(韓國史)의 명저 "동사강목"의 저자 안정복광주안씨(廣州安氏)는 안방걸(安邦傑)을 시조로 받들고 있다.문헌에 의하면, 시조 안방걸은 고려 태조때 광주(廣州)지방의 향리(鄕吏:고려.조선시대에 한 고을에서 대를 이어 내려오던 아전衙前)로 알려졌으며, 광주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하는 등 지역의 안정에 큰공을 세워, 그 공으로 대장군(大將軍:종3품)에 올라 광주군(廣州君)에 봉해졌기에, 후손들이 광주(廣州)를 본관으로 하였다.지난 2007년 9월6일 <광주안씨 대종회>에서는 광주안씨(廣州安氏)뿌리에 대해 고증을 통해 공식적으로 확정 공표하였다. <광주안씨가 확정 발표한 씨족 연원>"광주안씨(廣州安氏)시조의 휘(諱)는 방(邦)자 걸(傑)자이며, 고려 태조때 광주지방(廣州地方)의 관리로 뛰어났던 분이다.광주(廣州)의 어떤 사람이 지방수령을 죽이고 반란을 일으키자 이를 진압하고, 대장군(大將軍:종 3품)에 올라 광주군(廣州君)에 봉해져, 광주(廣州)를 본관으로 하게되었다.성씨(姓氏)를 갖게 된 유래는, 신라시대부터 고려초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씨(姓氏)가 없었고, 광주안씨를 갖게 된 것은 고려 태조가 후삼국을 통일 한 뒤 지방 호족들에게 성씨를 갖게 하는 정책에 따라, 안(安)씨 성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편집자 주>따라서 "죽산안씨(竹山安氏) 대동보"에 수록된 광주안씨(廣州安氏)관련 부분에 대해서, "광주안씨 대종회"에서는 공식 부정하고, 광주안씨(廣州安氏)는 이원의 자손에서 분적된 것이 아니라, 고려 태조때 광주지방의 관리로 대장군(大將軍:종3품 무관)에 오르고, 광주군(廣州君)에 봉해진 안방걸이 시조이며, 고려 태조의 사성(賜姓) 정책때 안씨성(安氏姓)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광주안씨는 1738년에 간행한 무오보(戊午譜)와 1749년에 간행한 기사보(己巳譜),경술보(庚戌譜,1790년간행),병인보(丙寅譜,1806년간행),임술보(壬戌譜,1922년간행),정유보(丁酉譜,1957년간행),계해보(癸亥譜,1983년간행)인 대동보(大同譜)와 1999년 간행한 국한문판(國漢文版)의 서령공파보가 있다.광주안씨(廣州安氏)는 조선시대에 안종록이 선조 29년에 문과에 장원급제한것을 비롯, 문과(文科:대과)에 45명,무과(武科:무관을 뽑던 과거로 시험은 무예와 병서였으며 초시.복시.전시 3단계 3년마다 실시됨)에 11명, 사마시(司馬試:생원.진사를 뽑던 과거)에 109명 등 165명의 과거급제자를 배출했다.인구조사에서 광주안씨는 1985년에는 12,500가구에 53,523명이었으며,2000년에는 13,517가구에 43,609명으로 조사되어 안씨(安氏)의 6,8%를 차지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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