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하위메뉴 바로가기

성씨유래검색

  • 성씨

    여(呂)

    문중

  • 유래

    우리나라 여씨(呂氏)는 김해여씨(1,569명).고성여씨(2000년조사때 처음 13명으로 조사됨).단양여씨(696명).대전여씨(1명).밀양여씨(416명).범중여씨(817명).상주(899명).선산여씨(1,205명).성량(86명).성산여씨(2000년조사에서 성산여씨는 7,796명이었으며,성산여씨 관련자료는 이책의 성주여씨 편 참고).성주여씨(11,012).안동여씨(485명).여주여씨(731명).여흥여씨(1명).전주여씨(2명).진풍여씨(1명).창원여씨(4명).청주여씨(287명).풍천여씨(4명).함녕여씨(875명).함안여씨(1,061명).함양여씨(25,667명).함흥여씨(2,182명).해영(511명).해주여씨(282명)등 25본관에 2000년 조사때는 56,692명이었다.그러나 성주와 함양여씨 이외는 세거지명이다.여씨(呂氏)성의 유래를 문헌을 통해 보면 주나라 무왕이 강태공망(姜太公望)을 여(呂)나라에 봉하고 호를 여상(呂尙)이라 함으로써 그 후손들이 성을 태공망의 호(號)인 여(呂)에서 따와 여씨(呂氏)라고 했다.그의 후손 여불위의 아들 여영(呂榮)이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秦始皇)이다.진시황은 여부소(呂扶蘇)와 여호해(呂胡海) 두 아들이 있었으며 여부소는 아들 여몽과 여자영이 있었고 여몽의 후손 여어매(呂御梅)가 중국 산동성 내주 사람이었는데 당나라 희종 때 한림학사(翰林學士:문신가운데 뽑힌 뛰어난 학자로서 고려때는 한림원.수문전 등의 종3품.정4품)로 있을때 [황소(黃巢)의 난]을 피하여 877년(신라 헌강왕 7,당나라 희종 4)에 신라에 귀화하여 전서(典書:정3품장관)를 지냈다고 하며 성주군 벽진면에 정착하고 세거하면서 우리나라 여씨(呂氏)의 근원을 이루었다.기록에 의하면 그의 후손으로 여임청(呂林淸) 여광유 형제가 있었고 여임청의 후손으로 여양유 여자열(呂子列).여자장(呂子章).여존혁(呂存赫)이 있었는데 여양유와 여자열의 계통은 본관을 [성주여씨]로 하였고 여광유의 계통과 여자장 여존혁은 본관을 [함양여씨]으로 하였다. 그러나 여씨는 같은 혈족이라 하여 <여씨 전국종친회>를 구성하여 <대동합보>를 만들었다.우리나라의 여씨(呂氏)는 성산여씨와 함양여씨를 막론하고 여어매(呂禦梅)를 시조로 받든다.그 후 자손이 번창하여 성산파와 함양파로 분파되었는데, 병란으로 양파의 족보가 모두 불에 타 지금은 '성산파'나 '함양파' 모두 시조 이후 300여년 동안의 세계(世系)를 자세히 알지 못한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목록
만족도조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

자료관리 담당부서 : 효문화마을관리원 > 뿌리공원과 > 뿌리공원담당 연락처 : 042-581-4445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