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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조선조 구한말까지 충절을 지켜온 명신(名臣) 배출의령여씨는 여선재(余善才)를 시조로 받들고 있다.시조 여선재(余善才)는 송나라 사람으로 간의대부(諫議大夫:고려때는 문하부의 정4품으로 직능은 습 .보궐 등과 함께 낭사(?舍)로서 봉박과 간쟁을 담당하였고 1356년(공민왕 5)좌.우간의대부를 통합하여 '간의대부'로 개칭하고 종3품으로 승격함)를 지냈다고 한다.문헌에 따르면, 송나라에서 간쟁(諫爭:강경하게 간함)을 담당한 간의대부(諫議大夫) 답게, 황제에게 직언을 서슴치 않다가, 미움을 사 고려때 우리나라로 정착하여 귀화했다고 한다. 그는 고려조에서 공을 세우고 의춘군(宜春君:의춘은 의령의 옛지명)에 봉해졌으며, 고려조에서 의령(宜寧)을 식읍(食邑:나라에서 공신 등에게 그 지방의 조세를 받아쓰게 하던 고을)으로 하사받고, 의령에 정착하면서 후손들이 여선재(余善才)를 시조로 받들고, 의령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그러나 시조 이후의 계대(系代)를 잃게 되어, 고려때 문과(文科대과)에 급제하고, 여러 관직을 역임한 여현경(余玄景)을 1세조로 받들고 있다.여씨(余氏)의 본관은 의령(宜寧)외에 12본이 있으나, 이는 세거지를 나타낸 것으로 전한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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