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하위메뉴 바로가기

세계 孝 중심지 향한 첫 발, 인성교육과 뿌리의식 - 孝 !World

성씨유래검색

  • 성씨

    오(吳)

    문중

    오(吳)

  • 유래

    오억령(吳億齡)과 오백령(吳百齡) 형제동복오씨(同福吳氏)는 대부분 이들 형제의 후손동복오씨(同福吳氏)는 도시조(都始祖) 오첨(吳瞻)의 24세손인 오현좌(吳賢佐)를 시조로 받든다.시조 오현좌(吳賢佐)는 1216년(고려고종3)에 거란을 토평한 공으로, 동복군(同福君)에 봉해졌으며, 시조의 큰 아들 오녕(吳寧)도 동복군(同福君)에 봉해져, 후손들이 본관을 동복(同福)으로 하였으며,둘째 아들 오숙귀는 군위오씨(軍威吳氏)로 분관하였다.그후 오녕(吳寧)의 손자 오대승(吳大陞)이 원종때 문과(文科:대과)에 급제하고,여러 관직을 거쳐 문하시중(門下侍中:백관을 통솔하고 서정을 총리한 종1품 정승)에 이르렀다.오대승의 아들 오광례(吳光禮)는 대장군(大將君:종3품)을 지냈으며,오광례의 아들 오선(吳璿)은 상호군(上護軍:상장군이 고쳐진 정3품)을 지내고,찬성사(贊成事:문하부의 정2품 부총리)에 이르렀으며, 오선의 아들 오잠(吳潛)이 예문관 대제학(藝文館大提學:고려때 제찬과 사명을 맡아보던 관청이며 대제학은 종2품 문형)을 거쳐,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중호(中護)라고도 하며 첨의부의 정2품 부총리)올라 귀성군에 봉해져,대대로 가문을 중흥시켰다.2000년 인구조사에서 동복오씨(同福吳氏)는 5만 5517명에1만 7317가구로 우리나라 오씨(吳氏)의 7.9%를 차지했다.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에는 <오백령 사우>가 있다.공주시 우성면 단지리 월굴마을에 위치한 이곳 사우는, 이괄의 난 때 인조를 호종했던 오백령의 영정을 봉안하던 것이 사우로 발전하였다.오백령(吳百齡,1560~1633)은 동복오씨로 조선중기의 문신이다. 인조때 대사성(大司成:성균관의정3품)과 형조참판(參判:종2품법무차관)등을 지냈으며, 이괄의 난때 인조임금을 공주로 호종하였다.문헌에 의하면,그는 임진왜란때 왜적이 어머니를 죽이려하자, 자신의 몸으로 이를 막자 효심에 감동한 왜적이 모자를 살려주어,오백령은 효자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동복오씨(同福吳氏)는 조선시대에 문과(文科:대과.문관을 뽑아쓰던 과거로 초시.복시.전시의 3단계였음)에 31명,무과(武科:무관을 뽑기 위한 과거로 시험은 무예와 병서로 초시.복시.전시의 3단계였음)에 6명,사마시(司馬試:생원.진사를 뽑던 과거)에 73명 등 110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하였다.동복(同福)은 전라남도 화순군에 위치한 지명으로,757년(경덕왕16)에 동복현(同福縣)으로 바뀌어 곡성군(谷城郡)의 영현이 되었다.1018년(현종 9)에는 보성군에 편입되었다가, 감무(監務:작은 현에 중앙에서 파견한 감독관)를 두면서 독립하였고,1405년(태종5)에는 화순군에 병합되어 복순(福順)으로 개칭하였다.1895년(고종32)에는 나주부 동복군이 되었고, 1914년 군면 폐합으로 동복군이 폐지되고 화순군에 편입되었다.

목록
만족도조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

자료관리 담당부서 : 효문화마을관리원 > 뿌리공원과 > 뿌리공원담당 연락처 : 042-581-4445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