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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위오씨(軍威吳氏)는 오씨(吳氏)의 도시조 오첨(吳瞻)의 24세손인 오현좌(吳賢佐:동복오씨 시조)의 둘째아들 오숙귀(吳淑貴)를 시조로 받든다.시조 오숙귀(吳淑貴)는 고려조에서 공을 세우고 비안군에 봉해졌으며,그의 6세손인 오인철이 고려때 사복(司僕:사복시의 준말로 사복시(司僕寺)는 고려.조선조에 궁중의 수레와 마필을 관리하던 관아)을 지냈다.후손들이 군위(軍威)에 대대로 살면서, 동복오씨(同福吳氏)에서 분관하여, 오숙귀를 시조로 받들고 본관을 군위(軍威)로 삼았다.군위오씨는 조선시대에 문과(文科:대과)에 2명, 사마시(司馬試:생원.진사를 뽑던 과거)에 2명 등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했다.인구조사에 의하면 군위오씨는 1985년에는 총 5,069가구 21,724명이었으며,2000년에는 7,025가구 22,408명이었다.군위(軍威)는 경상북도에 위치한 지명으로,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적라현(赤羅縣)으로 개칭하고, 효령현(孝靈縣)부림현(富林縣)과 함께 숭선군(崇善郡:선산)의 관할이 되었다. 군위현(軍威縣)의 명칭에 대한 일설로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할 무렵 후백제군을 치기 위해 이 지역을 지날 때, 고려군의 위세가 당당함을 칭송하기 위해 촌장에게 군위라는 이름을 지어준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1390년(공양왕 2)효령현은 군위현으로 부계현은 의흥군(義興郡)으로 각각 통합되어 감무(監務:작은현에 중앙에서 파견한 감독관)가 파견되었다.1914년 군.면 폐합으로 의흥군과 의성군의 일부가 군위군으로 병합되었다. 1979년에 군위면이 읍(邑)으로 승격되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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