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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세재(吳世才)는 죽림7현(竹林七賢),조선민족당 당수 독립운동가 오화영고창오씨(高敞吳氏)는 오학린(吳學麟)을 시조로 받든다.문헌에 의하면 시조 오학린(吳學麟)은 도시조 오첨의 17세손으로, 시문(詩文)에 정통하였고 벼슬은 한림학사(翰林學士문신 중에서 뽑힌 뛰어난 학자들로,왕의 측근에서 제찬(制撰).사명(詞命)의 일에 종사하거나 왕에게 경서(經書)를 강론하는 일을 맡아본 학자로 한림원.수문전.등의 종2품.정4품)에 이르렀다.시조 오학린은 1035년(고려 정종 1) 문과(文科:대과)에 급제하고, 1057년(문종11)에 사목(司牧:신라때는 수레와 말에관한일을맡아본 관아의 벼슬)으로 압록강에서 북쪽 오랑케를 토평한 공으로, 고창(高敞)을 식읍(食邑:공신에게 내리어 그곳의 조세를 개인이 받아쓰게 하던 고을)으로 하사 받았다.그리하여 시조의 식읍(食邑)지인 고창을 후손들이 본관으로 하였다.그의 아들 오질(吳質)은 한림학사(翰林學士:문신 중에서 뽑힌 뛰어난 학자들로,왕의 측근에서 제찬(制撰).사명(詞命)의 일에 종사하거나 왕에게 경서(經書)를 강론하는 일을 맡아본 학자로 종2품.종4품)를 역임하고, 오질의 아들 오세문(吳世文)은 승보시(陞補試고려때 생원을 뽑던 시험. 의종 원년(1147)부터 시행하였는데 시부(詩賦),경의(經義)의 과목이 있었음)에 장원(壯元)급제한 후 동각시학(東閣侍學고려때 동궁에 속하여 왕세자를 가르치던 벼슬로 공양왕 2년(1390)에 보덕(輔德)으로 고쳤으며,3품에서 6품)에 이르렀다. 오세문의 형(兄) 오세공(吳世功)과 동생 오세재(吳世才)도 당대의 이름난 학자였는데, 시와 서예(書藝)에 조예가 깊었던 오세재(吳世才)는 죽림7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으로,이인로(李仁老) 등과 교우관계를 두터이 하며,학문의 깊이를 더 하였다. 오세문(吳世文)의 중손인 오계유(吳季濡)는 충숙왕때 좌리공신(左理功臣)에 책록되고 삼중대광(三重大匡:정1품품계)으로 도첨의찬성사(都僉議贊成事:원나라의 간섭으로 상서성.중서성 등이 도첨의부로 통합되어 생긴 정2품부총리)를 지내고, 모양군(牟陽君)에 봉해졌으며,오계유(吳季濡)의 손자 오엄(吳淹)이 조선 태종때 경기도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각 도의 수군을 통솔하는 일을 맡아보던 정3품 외직)와 충청도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각도의 병마를 지휘하던 종2품)를 역임하였으며,오엄(吳淹)의 손자 오원찬(吳原纘)은 상장군(上將軍:정3품)에 이르렀다. 그밖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義兵將)으로 활약하였던 오운(吳澐)은 정유재란(丁酉再亂) 때도 커다란 공을 세워, 통정대부(通政大夫:정3품당상관 품계)에 올라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왕명을 출납하던 중추부의 정3품)를 거쳐 공조참판(工曹參判:종2품차관)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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