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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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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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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현전 학사 청백리(淸白吏) 옥고(玉沽)우리나라 옥씨(玉氏)는 중국에서 들어온 성씨(姓氏)로 문헌에 따르면,고구려의 요청에 의해 당나라에서 파견된 8재사(八才士) 중의 한 사람인 옥진서(玉眞瑞)가 신라에서 국학교수(國學敎授신라 시대에 창설한 교육 기관으로 신문왕 2년(682)에 처음으로 서울에 국학을 설치하였고,경덕왕이 태학감(太學監)으로 고쳤는데,혜공왕이 다시 국학이라 하였고,주역.상서.예기 등을 가르쳤는데 경.박사.조교 등의 관원이있었음)를 역임하고, 의춘군(宜春君:의춘은 의령의 옛지명)에 봉해져,의령(宜寧)에 정착하면서부터, 우리나라 옥씨(玉氏)의 시초가 되었다고 한다.그 후의 문헌이 전하지 않아, 후손들이 고려때 창정(倉正:고려때 창부경을 고친 이름으로 창정은 고려 창부倉部의 으뜸 향리직(鄕吏職)의 하나로 성종 2년(983)에 창부(倉部)의 경(卿)을 고친것)을 지낸 옥은종(玉恩宗)을 1세조로 받들고 있는 계통과 평장사(平章事:중서문하성의 정2품 부총리)를 지낸 옥여(玉汝)를 1세조로 받드는 계통이 갈라져 본관을 의령(宜寧)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 왔다.7세손 3형제대에서 파(派)가 나뉘어져, 옥사온(玉斯溫)의 후손은 거제파(巨濟派).의령파(宜寧派).자산파(慈山派:학생공파 學生公派),옥사미(玉斯美)의 후손은 의령파(宜寧派).군위파(軍威派:校理公派), 옥사인(玉斯仁)의 후손은 선천파(宣川派)를 이루었다.6세손 옥여(玉汝)의 후손은 해서파(海西派:黃海道派)를 이루었는데,그 중에서도 옥사미의 후손이 가장 번창했다.한편 고려말에 개성왕씨(開城王氏)가 이성계의 탄압을 피해 옥씨(玉氏)로 변성했다고 알려진,개성옥씨(開城玉氏)가 현존하고 있다.문헌에는 옥씨(玉氏)의 본관이 17본으로 전하지만,의령옥씨(宜寧玉氏) 단일본으로,1985년에는 4,9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13가구 20,196명이었으며,2000년에는 총 11본관이었으나, [의령옥씨] 이외의 본관은 세거지명으로 인구는 총 22,964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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