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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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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온씨(溫氏)는 서원온씨(西原溫氏).온양온씨(溫陽溫氏).전주온씨(全州溫氏).이성온씨(伊城溫氏).나주온씨(羅州溫氏).평고온씨(平皐溫氏).금구온씨(金溝溫氏).거야온씨(巨野溫氏).경주온씨(慶州溫氏).진주온씨(晋州溫氏).단양온씨.봉성온씨.서원온씨.장안.청주.경주 등 총 13본관에 2000년에는 총 5,081명이었다.봉성온씨(鳳城溫氏:시조는 온달 溫達 장군)고구려부터 이어온 뿌리깊은 성씨, 당의 설인귀도 물리친 온사문 장군온씨(溫氏)는 중국 주(周)나라 성왕(成王)의 아우로 당(唐)에 봉해진,숙우(叔虞)의 12세손 소후(昭候)가 그의 아우 사(師)를 온(溫)에 봉하고,평원(平原)에 도읍을 정하게 하여,온씨의 성(姓)이 비롯되었다고 한다. 문헌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 따르면,온씨(溫氏)의 본관은 서원(西原).온양(溫陽).전주(全州).이성(伊城).나주(羅州).금구(金溝).거야(巨野).경주(慶州).진주(晋州) 등 11본(本)이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같은 혈족이므로 봉성(鳳城)으로 단일화하고 있다문헌에 의하면 온씨(溫氏)는 삼국시대부터 우리나라에 들어와 고구려때 평강공주와 혼인하여 평원왕의 부마(駙馬,부마도위의 약자.왕의 사위)가 된 온달(溫達)로부터 온씨(溫氏)의 혈통이 시작되었다.신라 진덕여왕때의 온군해(溫君解)는 삼국사기(三國史記)에 김춘추 관련 일화가 전하며 고려 충목왕때 회양부사(府使:정3품 수령)를 지낸 온수로 혈통이 이어져 왔다.온씨(溫氏)의 시조 온달(溫達, ~590)장군은 고구려 25대 평원왕의 딸 평강공주(平康公主)와 결혼하여 부마(駙馬:왕의 사위)가 되고 그때부터 우리 나라 온씨가 시작되었다.온달(溫達)은 부마(駙馬:왕의 사위)로 전쟁에 공을 세워 대형(大兄:조의대두형으로 고구려때 14관등중 5번째 등급)벼슬에 오르고, 서기 590년 한강 이북의 땅 을 찾고자 출전했다가 전사하였다.또한 널리 알려진 온사문(溫沙門)장군은 보장왕때 당나라 설인귀 군을 횡산에서 물리쳐 크게 명성을 떨쳤음이 역사에 기록되어있다.온씨(溫氏)는 이와같이 뿌리가 깊은 성씨이지만,중간 세계(世系)를 잃게 되어 중간 세계(世系)를 밝히지 못하고, 신라 진덕왕때의 온군해(溫君解) 후손으로,고려 충목왕때 회양부사(淮陽府使:회양은 강원도 서북쪽 지명,정3품 수령)를 지낸 온수(溫粹)의 아들인 온선(溫善)과 온신(溫信)형제부터 세계(世系)가 시작된다.형(兄)인 온선(溫善)은 예의판서(禮儀判書:고려말의 정3품장관)를 지냈고,아우 온신(溫信)은 공민왕 때 우부시랑(右部侍郞:사랑은 정4품 차관)으로 이존오(李存吾).정추(鄭樞) 등과 함께, 신돈(辛旽)의 전횡을 탄핵하다가, 왕의 노여움을 사서 거야(居野:김제시 금구면의 옛지명)로 유배되어,그 곳에서 세거(世居)하였다.그래서 후손들은 온신(溫信)을 1세조(一世祖)로 받들며 세계(世系)를 이어오면서,금구온씨(金溝溫氏)가 되었다.온선(溫善)의 14세손 온희영은 경주에 살면서 경주온씨로 하였으며,온신(溫信)의 7세손 온효진(溫孝珍)이 명종 2년 정미사화(丁未士禍) 때 요동(遼東)으로 피신했다가, 13년만에 북청(北靑)으로 돌아와 그곳에서 세거하게 되어 그의 자손들이 청주온씨(靑州溫氏)로 하였는데, 호적에 청(靑)자를 청(淸)자로 오기(誤記)하여 청주온씨(淸州溫氏)가 되었다고 한다.온씨(溫氏)는 같은 혈손이면서도 금구.경주.청주 등 3본으로 갈라졌는데, 모두 같은 혈손이라 하여 온달(溫達)을 도시조(都始祖)로 각 분관 조를 파조(派祖)로 하고,본관을 [봉성온씨]로 환적하여,<온씨중앙종친회>를 구성하였다.한편 <삼국사기> 신라본기(本記) 진덕왕조에는 김춘추와 온군해의 일화가 기록되어있다.서기 648년(진덕왕2) 김춘추는 당나라에 사절로 갔다가, 돌아오는 도중 해상에서 고구려 순찰병과 맞닥뜨렸다. 이때 김춘추의 수행원인 온군해가 위험을 알아 차리고, 김춘추를 작은배로 도피시키고 자신은 김춘추의 의관을 입고 배의 높은 곳에 앉았다.고구려 군사들은 온군해를 김춘추로 착각해 그를 죽였다. 온군해의 희생덕분에 무사히 신라로 돌아온 김춘추는 진덕여왕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고, 진덕왕은 온군해에게 대아찬(大阿飡:신라의 17관등증 제5등급으로 대아찬부터 서불한 까지는 진골만이 오름,복색은 자주빛)의 벼슬을 추증하고, 자손에게 후한 상을 내렸다.한편 경주김씨 문중은 "이런 역사적 사실 때문에 경주김씨들은 온씨들을 은인으로 생각하며 살고 있다"며, 만약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1379년전 김춘추장군을 살린 대아찬 온군해와 조상이 같다면 적절한 경로로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인구조사에서 봉성온씨는 전북 김제시 금구면 일대가 집성촌으로, 1985년에는 총 575가구에 2,374명이었으며, 2000년에는 총 430가구에 1,417명이었다.한편,사현사(四賢祠)는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산동리 792번지에 있는데,1934년 당시 이곳에 거주하던 봉성온(溫)씨 문중의 집안사당으로 대율리에 세워진 것이다. 그러나 1967년 대율저수지 관계로 물속에 잠기게 되어,지금의 자리로 옮겨 지은것이라고 한다.사당은 앞면 3칸,옆면 3칸,맛배지붕의 건물과 강당 1동이 있다.이곳에는 수신제 온신을 중심으로, 온림,한수제 온윤,한정 온후를 모시고 있다.사당에는 온달(溫達)장군의 단(壇)과 온군해 장군의 단이 설치되어 있다.1934년 3월 28일,이지방 유림들이 장군들의 업적을 오래토록 추모하기 위해 단(壇)을 세우고,매년 음력 9월 13일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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