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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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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릉왕씨(江陵王氏)의 시조는 고려 태조 왕건(王建)의 아들 왕유(王裕)이다.시조 왕유(王裕)는 원보(元甫고려때 둔 향직(鄕職)의 4품 하(下)품계)를 지냈다고 한다.그러나 이후의 문헌이 없어,정확한 세계(世系)는 알 수 없으나, 후손들이 왕유를 시조로 받들고 강릉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한편 왕예(王乂)를 시조로 받드는 문헌도 있다.강릉은 기원전부터 성읍국가인 예맥족(濊貊族)의 예국(濊國)이 있던 지역으로,서기127년 이후에는 창해(滄海)와 임둔(臨屯)에 속하였다. 639년(선덕여왕 8)2월에는 북소경(北小京)을 두었고 658년(무열왕5) 말갈족과 인접해 있다는 이유로 소경을 폐지하고 하서주(河西州)로 개편하여 도독을 두었다.757년(경덕왕 16) 명주(溟州)로 개편하여 명주도독부(溟州都督府)를 두었고 9군 25현을 관할하였다. 936년(고려 태조19)에는 동원경(東原京)으로 고쳐 임영관(臨瀛館)을 두었다.그 후 우계(羽谿).연곡(連谷)의 두 현을 두었다가,1260년(원종1) 공신(功臣) 김홍취의 고향이라하여 경흥도호부(慶興都護府)로 승격되었으며, 1389년(공양왕1)에는 강릉대도호부(江陵大都護府)가 설치되었다.1931년 강릉면이 강릉읍으로 승격되었고,1995년 강릉시와 명주군을 강릉시로 통합하였다. 인구조사에서 강릉왕씨는 2000년에는 449가구 1,526명이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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