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하위메뉴 바로가기

성씨유래검색

  • 성씨

    유(劉)

    문중

    유(劉)

  • 유래

    도시조의 큰 아들 유견규(劉堅規)가 거타군(居陀君)에 봉해져 거창을 관향으로 삼아중국대륙의 한재를 막은 예조판서 유한우 배출거창유씨(居昌劉氏)의 관향인 거창은 신라 경덕왕이 거창(居昌)으로 고쳤고, 조선 태종때 거제현(巨濟縣)과 합하여 제창현(濟昌縣)이 되었다. 후에 다시 거창(居昌)이 되어 성종때 군(郡)이 되었다가, 중종때 현(縣)으로 강등되었으며, 1658년(효종9)안음(安陰)에 편입시켰고, 여러차례 변화를 거쳐 1895년(고종 32)에 거창군(居昌郡)이 되었다.우리나라 모든 유씨(劉氏)의 도시조(都始祖)인 유전(劉筌,자는 원보,시호는 문양)은 한고조(漢高祖) 유방의 41세손으로 도학과 문장이 뛰어났다고 하며, 송나라에서 벼슬이 병부상서(兵部尙書정3품 국방장관)에 이르렀다.도시조 유전(劉筌)은 1082년(고려 문종 36년) 8학사의 일원으로 고려에 들어온후 경북 영천지방에 정착하여 살았으며,고려 공민왕때에 이르러 특명으로 그를 위한 사우가 건립되고, 고려 태조와 함께 7왕을 모신 숭의전에 배향되고 있다.도시조 유전의 묘는 경북 영천시 영천읍 녹전동에 있다.거창유씨는 송나라에서 병부상서(兵部尙書:정3품 국방장관)를 지낸 유전(劉筌:자는 원보,시호는 문양)이 8학사(八學士)의 일원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경북 영천지방에 정착 세거하면서 부터이다.그후 유전(劉筌)의 큰 아들인 유견규(劉堅規)가 거타군(居陀君:거타는 거창의 옛 지명)에 봉해졌기에 그의 후손들이 거창(居昌)을 관향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목록
만족도조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

자료관리 담당부서 : 효문화마을관리원 > 뿌리공원과 > 뿌리공원담당 연락처 : 042-581-4445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