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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조 유국추(劉國樞) 평장사(平章事:부총리)에 추증 배천군(白川君)에 추봉아들 유승은 봉군(封君),손자 유현은 대제학(大提學)에 올라 가문 중흥시켜배천유씨(白川劉氏)는 우리나라 유씨의 도시조(都始祖)인 유전(劉筌,호는 죽간,시호는 문양,한고조 유방(劉邦)의 41세손)의 후손이다.유전은 도학과 문장이 뛰어났다고 하며,송나라에서 벼슬이 병부상서(兵部尙書:정3품 방장관)에 이르렀다.도시조 유전은 1082년(고려 문종 36년) 8학사의 일원으로 고려에 들어온 후, 경북 영천지방(또는 영일군)에 정착하여 살았으며, 공민왕때에 이르러 특명으로 그를 위한 사우(祠宇)가 건립되었고, 고려 태조와 함께 7왕을 모신 숭의전에 배향되고 있다.배천유씨(白川劉氏)는 유전의 8세손 유국추(劉國樞)가 배천군(白川君)에 봉해져 본관을 배천으로 하였다.배천(白川,지명은 발음을 배천으로 함)은 황해도에 위치한 지명으로,고려초에 배천(白川)으로 고쳤으며, 현종때 복흥군으로 승격되었으나, 공민왕때 배주로 고쳤고, 1413년(태종 13)에 배천군으로 개칭되어 경기도로부터 황해도로 옮겼고, 1526년(중종 21)에는 현(縣)으로 강등시켰다. 1895년(고종32)에 군(郡)으로 승격하였으며, 1914년 연안(延安)에 병합되어 연백군이 되었다.배천유씨(白川劉氏)의 시조 유국추(劉國樞)는 도시조 유전(劉筌)의 8세손으로 고려시대에 도첨의평리(都僉議評理:참지정사가바뀐 종2품재신)를 지내며 나라에 공을 세워 평장사(平章事:중서문하성의 정2품 부총리)에 추증되고 배천군(白川君)에 추봉되었다. 후손들은 유국추(劉國樞)를 시조로 받들고, 거창 유씨(居昌劉氏)에서 분적하여,본관을 배천(白川)으로 하게 되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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