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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진유씨는 유적(兪迪)을 시조로 받들고 있다. 시조 유적(兪迪)은 강진에 살아온 사족(士族:문벌이 좋은 집안. 선비의 집안)의 후예로 전하며, 고려 말에 감문위상장군(上將軍:중앙군 최고지휘관인 정3품)과 공조판서(工曹判書:고려말 6사의 하나인 공조의 정3품 장관)를 역임했다.강진(康津)은 전남의 남서해안에 위치하는 지명으로,도강(道康)과 탐진(耽津)의 합명인데, 도강현(道康縣)은 통일신라때 양무군(陽武郡)으로 개칭하고,고려때 도강으로 고쳐서 영암에 속하게 했다.탐진현(耽津縣)은 통일신라 경덕왕 때 탐진으로 고쳐 양무군에 예속시켰으며, 고려때는 장흥(長興)으로 이속(移屬)시켰다.1417년(태종17) 각 병마절도사영(節度使營:종2품 절도사가 집무하던 곳)을 도강 구치(舊治)에 이설(移設)하고, 양 현을 합쳐 강진군을 설치하여 탐진에 치소(治所)를 두었다.1936년 강진면이 강진읍으로 승격되었다. 인구조사에 의하면 강진유씨(康津兪氏)는 1985년에는 3,540가구에 15,805명이었으며,2000년에는 467가구에 1,589명이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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