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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령유씨의 시조는 유진(兪軫)으로 현감(縣監:종6품 수령)을 지냈으며, 시조 유진의 선조는 고려 때 통례문지후(通禮門祗候:통례문은 고려 때 조회와 의례를 맡아보던 관아로 1275년(충렬왕 1)에 합문(閤門)을 고친것. 지후는 '삼가 어른을 모시어 시중 듦' 이란 뜻으로 정7품)를 지낸 유보라고 한다. 그러나 그후의 기록이 없어 유진(兪軫)을 시조로 받들고 본관을 고령으로 하였다.고령(高靈)은 경상북도 남서쪽에 위치한 지명으로, 대가야국의 중심지로 이진아고왕(伊珍阿鼓王)으로부터 도설지왕(道設智王)까지 16대 520년간을 계승해 오다가, 서기 562년(진흥왕 23) 신라에 병합되었고,1018년(현종 9) 영천현으로 개편되어, 경산부(京山府:성주)에 속하게 되었다.1175년(명종 5)에 감무(監務:작은 현에 중앙에서 파견한 감독관)를 두었다. 1413년(태종13)에 고양군과 영천현을 고령현으로 병합하고, 1895년(고종32) 성주군과 현풍군의 일부를 통합한 고령군이 되었다.인구조사에서 고령유씨는 1985년에는 1,957가구에 8,743명이었고2000년에는 총 238가구에 735명이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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