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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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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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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원(漆原)은 경상남도 함안군에 위치했던 지명으로,신라 경덕왕이 칠제로 고쳐서 의안군(義安郡:창원)에 예속시켰으며,고려초에 칠원(漆原)으로 고쳤고,조선 선조때 창원에 속하였다가 광해군때 현(縣)이 되었고,1895년(고종32) 군(郡)으로 승격하였으며 후에 함안군(咸安君)에 병합되었다.<칠원윤씨대종회>의 칠원윤씨유래에 대한 기록과 문헌에 의하면,칠원윤씨(漆原尹氏)는 신라 무열왕때 태자태사(太子太師:삼공(태사.태부.태보)의 하나로 정1품)를 지낸 윤시영(尹始榮)을 시조로 받든다.시조 윤시영(尹始榮)의 아들 윤황(尹璜)이후의 세계(世系)를 잃게 되어,고려에서 보윤호장(甫尹戶長:고려 향직의 우두머리로 해당 고을의 모든 향리들이 수행하던 말단 실무행정을 총괄하였다. 나말여초 지방의 성주나 호족들은 고려 태조가 호장, 부호장의 향직을 주면서 탄생하였고 이들은 지방자치의 성과를 많이 거두었음,보윤은 향직 종8품)을 지낸 윤거부(尹鉅富)를 중시조로 받들며 세계(世系)를 이어왔다.그 후 17세손 윤길보(尹吉甫,시호 충의)가 삼중대광(三重大匡:정1품 문관 품계)으로,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원나라의 간섭으로 통합된 첨의부 정2품)를 역임하였고,귀성군(龜城君)에 봉해져 후손들이 칠원(漆原)에 정착세거하면서 본관을 칠원(漆原)으로 하였다.인구조사에 의하면 칠원윤씨는2000년에는 총 16,829가구에 54,263명이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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